한용교(韓龍敎)
[요약정보]
| UCI | G002+AKS-KHF_13D55CC6A9AD50B1827X0 |
| 자(字) | 우약(雨若) |
| 생년 | 1827(순조 27) |
| 졸년 | ?(미상) |
| 시대 | 조선후기 |
| 본관 | 청주(淸州) |
| 활동분야 | 문신 |

| 부 | 한영리(韓永履) |

[상세내용]
한용교(韓龍敎)
1827년(순조 27)~미상. 조선 말기 문신. 자는 우약(雨若)이다.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거주지는 경기도 수원부(水原府)이다.
증조부는 한최유(韓最裕)이고, 조부는 군수(郡守) 한용겸(韓用謙)이며, 부친은 한영리(韓永履)이다. 외조부는 신영국(愼永國)이고, 처부는 정순조(鄭舜朝)이다.
1859년(철종 10) 증광시 문과에 병과 30위로 급제하였다. 관직은 수찬(修撰)‧선교관(宣敎官)‧우부승지(右副承旨)‧이천부사(利川府使)‧이조참의(吏曹參議)‧사간원대사간(司諫院大司諫)‧강동현감(江東縣監) 등을 역임하였다.
1883년(고종 20) 이천부사 시절 고을을 제대로 다스리지 않아 백성들의 삶이 힘들어졌다는 강원도암행어사(江原道暗行御史) 이도재(李道宰)의 장계(狀啓)로 인해 유배되었다가 곧 풀려나 재등용되었다.
1890년(고종 27) 이조참의로서 곡반(哭班)에 참여하지 않아 중화부(中和府)로 유배되었다가 얼마되지 않아서 풀려났다. 1902년(광무 6)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갈 때 정3품에 가자(加資)되었으며, 1907년(융희 1) 순종황제 즉위식에서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가자되었다.
증조부는 한최유(韓最裕)이고, 조부는 군수(郡守) 한용겸(韓用謙)이며, 부친은 한영리(韓永履)이다. 외조부는 신영국(愼永國)이고, 처부는 정순조(鄭舜朝)이다.
1859년(철종 10) 증광시 문과에 병과 30위로 급제하였다. 관직은 수찬(修撰)‧선교관(宣敎官)‧우부승지(右副承旨)‧이천부사(利川府使)‧이조참의(吏曹參議)‧사간원대사간(司諫院大司諫)‧강동현감(江東縣監) 등을 역임하였다.
1883년(고종 20) 이천부사 시절 고을을 제대로 다스리지 않아 백성들의 삶이 힘들어졌다는 강원도암행어사(江原道暗行御史) 이도재(李道宰)의 장계(狀啓)로 인해 유배되었다가 곧 풀려나 재등용되었다.
1890년(고종 27) 이조참의로서 곡반(哭班)에 참여하지 않아 중화부(中和府)로 유배되었다가 얼마되지 않아서 풀려났다. 1902년(광무 6)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갈 때 정3품에 가자(加資)되었으며, 1907년(융희 1) 순종황제 즉위식에서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가자되었다.
[참고문헌]
國朝文科榜目
縉紳八世譜
八道總錄
高宗實錄
純宗實錄
縉紳八世譜
八道總錄
高宗實錄
純宗實錄
[집필자]
이은영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