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계일(洪啓一)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D64DACC4C77CU9999X0 |
생년 | ?(미상)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남양(南陽[唐]) |
활동분야 | 유생 |

부 | 홍우성(洪禹成) |
생부 | 홍우행(洪禹行) |

[관련정보]
[상세내용]
홍계일(洪啓一)
생졸년 미상. 조선 후기 유생. 본관은 남양(南陽[唐])이고, 출신지는 한양(漢陽: 현 서울)이다.
부친은 홍우성(洪禹成)이다. 생부는 홍우행(洪禹行)이다.
1717년(숙종 43) 송시열(宋時烈)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며 헐뜯고 욕한 죄목으로 귀양을 갔다. 이후 공조판서(工曹判書) 조태채(趙泰采)가 상소하여 임상극(林象極) 등과 함께 사면되었는데, 사헌부(司憲府)에서 사면을 반대하는 여론이 형성되어 석방되지 못하였다.
1723년(경종 3) 식년시에 생원 2등 11위로 합격하였다.
앞서 있었던 대노(大老) 송시열을 함부로 욕한 죄목을 가지고 노론(老論)이 수십 년간 조정의 공론(公論)으로 삼더니, 끝내 1747년(영조 23) 삼사(三司)에서 신임사화(辛壬士禍)를 일으킨 김일경(金一鏡)‧목호룡(睦虎龍)의 역절에 관계된 사람을 탄핵할 때 남태징(南泰徵)‧이사성(李思晟)‧이명언(李明彦)‧권익관(權益寬)‧정사효(鄭思孝)‧이유익(李有翼) 등과 함께 그 일파로 지목하고 연좌되었다.
부친은 홍우성(洪禹成)이다. 생부는 홍우행(洪禹行)이다.
1717년(숙종 43) 송시열(宋時烈)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며 헐뜯고 욕한 죄목으로 귀양을 갔다. 이후 공조판서(工曹判書) 조태채(趙泰采)가 상소하여 임상극(林象極) 등과 함께 사면되었는데, 사헌부(司憲府)에서 사면을 반대하는 여론이 형성되어 석방되지 못하였다.
1723년(경종 3) 식년시에 생원 2등 11위로 합격하였다.
앞서 있었던 대노(大老) 송시열을 함부로 욕한 죄목을 가지고 노론(老論)이 수십 년간 조정의 공론(公論)으로 삼더니, 끝내 1747년(영조 23) 삼사(三司)에서 신임사화(辛壬士禍)를 일으킨 김일경(金一鏡)‧목호룡(睦虎龍)의 역절에 관계된 사람을 탄핵할 때 남태징(南泰徵)‧이사성(李思晟)‧이명언(李明彦)‧권익관(權益寬)‧정사효(鄭思孝)‧이유익(李有翼) 등과 함께 그 일파로 지목하고 연좌되었다.
[참고문헌]
[집필자]
김경희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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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