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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혁선(鄭赫先)

[요약정보]

UCIG002+AKS-KHF_13C815D601C120B1666X0
자(字)현보(顯甫)
생년1666(현종 7)
졸년1733(영조 9)
시대조선후기
본관동래(東萊)
활동분야관리

[상세내용]

정혁선(鄭赫先)
1666년(현종 7)(주1)
생년
본인의 사마방목을 참고하여 생년을 추가함.
~1733년(영조 9)(주2)
졸년
東萊鄭氏族譜를 참고하여 졸년을 추가함.
. 조선 후기 관리. 자는 현보(顯甫). 본관은 동래(東萊)(주3)
본관
본인의 사마방목을 참고하여 본관을 동래(東萊)로 추가함.
.

부친은 성주목사(星州牧使) 정재대(鄭載岱)이다. 처부는 연안이씨 이영(李泳)(주4)
가족
본인의 사마방목을 참고하여 부를, 東萊鄭氏族譜를 참고하여 처부를 추가함.
이다.

1716년(숙종 42)에는 음성현감(陰城縣監)으로 재직 중이었는데, 정사를 가혹하게 시행한다는 내용으로 사헌부(司憲府)로부터 탄핵을 받았다. 임금은 최초 파직 건의에 대하여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이후 상소가 거듭되자, 그를 해당 직위에서 파직시켰다. 1717년(숙종 43)에는 남원현감(南原縣監)으로 임명되었는데, 집의(執義) 권엽(權熀) 등으로부터 지난날의 잘못을 근거로, 해당 직위에 적합하지 않다는 탄핵을 받았다.

1725년(영조 1)에는 인천부사(仁川府使)로 재직 중이었는데, 인물됨이 잔악하며 백성들을 수탈한다는 내용으로, 정언(正言) 임주국(林柱國)에게 탄핵을 받았다. 그러나 이후 그의 아전들이 엄격한 규율에 불만을 품고, 그에 대한 간계를 꾸민 것으로 판명되어, 파직이 취소되었고, 해당 관원들은 유배형을 당하였다. 1728년(영조 4)에는 파주목사(坡州牧使)에 임명되었다. 1732년(영조 8)에는 밀양부사(密陽府使)로 재직 중이었는데, 백성들을 구휼하는데 힘쓴 공을 인정받아서, 품계를 올려 받았다.

[참고문헌]

肅宗實錄
英祖實錄

[집필자]

정병섭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