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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종(李萬宗)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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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미상)
졸년?(미상)
시대조선후기
활동분야문관

[상세내용]

이만종(李萬宗)
생졸년 미상. 조선 후기 문관. 거주지는 충청북도 청주(淸州)이다.

양반 집안에서 태어나, 청주 일대 면(面)에서 호적 등의 사무를 처리하는 면임(面任)을 지냈다.

1733년(영조 9) 신필대(申必大)와 이귀흥(李貴興) 등이 흉년으로 살기 어려운 백성을 구제한다는 명목으로 도당(徒黨)을 모으고 서울로 점거하고자 했던 역모가 발각되었다. 이때 이만종(李萬宗)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신필대는 사적 감정으로 이만종이 역모 계획 중 청주 일대부터 경기도 안성(安城)까지 자신을 따르고 음식을 제공하였다며 이흥득(李興得)‧구이후(具爾垕) 등에 더해 역모 가담자로 거론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역모 죄로 추국(推鞫)되었다. 그러나 대질 신문 결과 역모 가담은 거짓으로 드러났다. 당시 신필대는 역모 죄에 더해 모해 죄가 가중되어 극형에 처해졌다. 역모에 가담한 황재징(黃再徵)‧황재흥(黃再興)‧황택(黃澤)은 절도(絶島)와 극변(極邊)에 유배되었고, 황재엽(黃再曄)‧황재섬(黃再暹)은 정배(定配)되었다. 또한 누명을 쓴 사실이 인정된 구이후 등은 석방되었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집필자]

이은영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