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현겸(具顯謙)
[관련정보]
[상세내용]
구현겸(具顯謙)
생졸년 미상. 조선 후기 무신. 본관은 능성(綾城)이다.
조부는 판돈녕부사(判敦寧府事)를 지낸 구성임(具聖任)이고, 부친은 구선행(具善行)이다.
1763년(영조 39) 특지(特旨)로 승지(承旨)에 제수되었다. 1765년(영조 41)에 호군(護軍)으로 있을 때 영조가 몸소 삼간택을 행하여 아들 구민화(具敏和)가 화길옹주(和吉翁主)와 혼인하였다. 1771년(영조 47) 8월에 평안도병마절도사(平安道兵馬節度使)에 제수되었다. 1772년(영조 48) 1월 전병사 이은춘(李殷春)이 군량미를 내다 팔아 백성들에게 쌀을 빌려주고 이익을 남긴 일을 장계하지 않은 죄로 대사간(大司諫) 심관(沈鑧)의 탄핵을 받고 서용(敍用)하지 말라는 명이 있었으나 곧 철회되었다. 4월에 영조가 북한산성(北漢山城)에 거둥하였다가 환궁할 때 관성장(管城將)으로서 임금의 환궁을 맞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삭직되었다. 1774년(영조 50)에는 통제사(統制使)에 제수되었다.
조부는 판돈녕부사(判敦寧府事)를 지낸 구성임(具聖任)이고, 부친은 구선행(具善行)이다.
1763년(영조 39) 특지(特旨)로 승지(承旨)에 제수되었다. 1765년(영조 41)에 호군(護軍)으로 있을 때 영조가 몸소 삼간택을 행하여 아들 구민화(具敏和)가 화길옹주(和吉翁主)와 혼인하였다. 1771년(영조 47) 8월에 평안도병마절도사(平安道兵馬節度使)에 제수되었다. 1772년(영조 48) 1월 전병사 이은춘(李殷春)이 군량미를 내다 팔아 백성들에게 쌀을 빌려주고 이익을 남긴 일을 장계하지 않은 죄로 대사간(大司諫) 심관(沈鑧)의 탄핵을 받고 서용(敍用)하지 말라는 명이 있었으나 곧 철회되었다. 4월에 영조가 북한산성(北漢山城)에 거둥하였다가 환궁할 때 관성장(管城將)으로서 임금의 환궁을 맞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삭직되었다. 1774년(영조 50)에는 통제사(統制使)에 제수되었다.
[참고문헌]
[집필자]
이동인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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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