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기연(黃耆淵)
[요약정보]
| UCI | G002+AKS-KHF_13D669AE30C5F0B1835X0 |
| 자(字) | 영숙(英叔) |
| 생년 | 1835(헌종 1) |
| 졸년 | ?(미상) |
| 시대 | 조선후기 |
| 본관 | 창원(昌原) |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 부 | 황종림(黃鍾林) |
| 생부 | 황종창(黃鍾昌) |
| 출신지 | 과천 |

[관련정보]
[상세내용]
황기연(黃耆淵)
1835년(헌종 1)∼미상. 조선 말기의 문신.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영숙(英叔). 과천 출신. 황종창(黃鍾昌)의 아들로, 황종림(黃鍾林)에게 입양되었다.
1873년(고종 10)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수찬(修撰)에 제수되었다.
그뒤 부교리‧부수찬을 거쳐, 1888년 대사성이 되었다.
이때 함경도 영흥부민들이 환전(還錢)의 고통을 견디다 못하여 민란을 일으키자, 안핵사로 파견되어 난의 책임을 물어 함경감사‧함경도병마절도사‧영흥부사 등을 모두 유배가게 하였다. 같은해 대사간을 거쳐, 1891년 이조참의‧주진감리(駐津監理)를 지냈다.
1898년 함경남도관찰사와 평안남도관찰사를 역임하였고, 1901년부터 1904년 사이 세 차례에 걸쳐 궁내부특진관을 지냈으며, 1907년 중추원찬의(中樞院贊議)가 되었다.
1873년(고종 10)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수찬(修撰)에 제수되었다.
그뒤 부교리‧부수찬을 거쳐, 1888년 대사성이 되었다.
이때 함경도 영흥부민들이 환전(還錢)의 고통을 견디다 못하여 민란을 일으키자, 안핵사로 파견되어 난의 책임을 물어 함경감사‧함경도병마절도사‧영흥부사 등을 모두 유배가게 하였다. 같은해 대사간을 거쳐, 1891년 이조참의‧주진감리(駐津監理)를 지냈다.
1898년 함경남도관찰사와 평안남도관찰사를 역임하였고, 1901년부터 1904년 사이 세 차례에 걸쳐 궁내부특진관을 지냈으며, 1907년 중추원찬의(中樞院贊議)가 되었다.
[참고문헌]
高宗實錄
純宗實錄
國朝榜目
韓國史―最近世篇―(震檀學會, 乙酉文化社, 1961)
純宗實錄
國朝榜目
韓國史―最近世篇―(震檀學會, 乙酉文化社, 1961)
[집필자]
강진갑(康鎭甲)
| 대표명 | 황기연(黃耆淵) |
| 성명 | 황기연(黃耆淵) |
성명 : "황기연(黃耆淵)"에 대한 용례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