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헌종(洪軒鍾)
[요약정보]
| UCI | G002+AKS-KHF_13D64DD5CCC885B1826X0 |
| 자(字) | 운성(雲聲) |
| 생년 | 1826(순조 26) |
| 졸년 | ?(미상) |
| 시대 | 조선후기 |
| 본관 | 남양(南陽[唐]) |
| 활동분야 | 문신 |

| 부 | 홍재혁(洪在赫) |

[관련정보]
[상세내용]
홍헌종(洪軒鍾)
1826년(순조 26)~미상. 조선 후기 문신. 자는 운성(雲聲)이다. 본관은 남양(南陽[唐])이고, 거주지는 경(京; 서울)이다.
증조부는 홍병익(洪秉翼)이고, 조부는 홍영섭(洪寧燮)이며, 부친은 통훈대부(通訓大夫) 행금구현령(行金溝縣令) 홍재혁(洪在赫)이다. 외조부는 윤응대(尹應大)이고, 동생으로 홍윤종(洪輪鐘)이 있다.
1846년(헌종 12) 식년시 진사 3등에 32위로 합격하였으며, 1860년(철종 11) 정시 병과에 7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관직은 별 겸춘추(別兼春秋)‧자산부사(慈山府使)‧수찬(修撰)‧부교리(副校理)‧부사직(副司直)‧장령(掌令)‧형조참의(刑曹參議)‧동부승지(同副承旨)‧행부호군(行副護軍) 등을 역임하였다.
1864년(고종 1) 부수찬(副修撰) 재임 시절 홍문관(弘文館) 관료들과 함께 상소문 내용으로 물의를 일으켜 섬으로 유배 보내진 김진형(金鎭衡)의 사형을 촉구하는 연명차자(聯名箚子)를 수차례 올렸으나 뜻을 이루지는 못하였다. 같은 해에 의주부윤(義州府尹)으로 재임하던 심이택(沈履澤) 부자(父子)가 탐욕스럽게 거둬들인 뇌물들이 상상을 초월하는 양이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좀 더 강력한 처벌을 촉구하는 연명차자를 올리는데 참여하였다. 그 해에 진전(眞殿)에서 작헌례(酌獻禮)례가 행해질 때 참석하여 가자(加資)되었다.
증조부는 홍병익(洪秉翼)이고, 조부는 홍영섭(洪寧燮)이며, 부친은 통훈대부(通訓大夫) 행금구현령(行金溝縣令) 홍재혁(洪在赫)이다. 외조부는 윤응대(尹應大)이고, 동생으로 홍윤종(洪輪鐘)이 있다.
1846년(헌종 12) 식년시 진사 3등에 32위로 합격하였으며, 1860년(철종 11) 정시 병과에 7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관직은 별 겸춘추(別兼春秋)‧자산부사(慈山府使)‧수찬(修撰)‧부교리(副校理)‧부사직(副司直)‧장령(掌令)‧형조참의(刑曹參議)‧동부승지(同副承旨)‧행부호군(行副護軍) 등을 역임하였다.
1864년(고종 1) 부수찬(副修撰) 재임 시절 홍문관(弘文館) 관료들과 함께 상소문 내용으로 물의를 일으켜 섬으로 유배 보내진 김진형(金鎭衡)의 사형을 촉구하는 연명차자(聯名箚子)를 수차례 올렸으나 뜻을 이루지는 못하였다. 같은 해에 의주부윤(義州府尹)으로 재임하던 심이택(沈履澤) 부자(父子)가 탐욕스럽게 거둬들인 뇌물들이 상상을 초월하는 양이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좀 더 강력한 처벌을 촉구하는 연명차자를 올리는데 참여하였다. 그 해에 진전(眞殿)에서 작헌례(酌獻禮)례가 행해질 때 참석하여 가자(加資)되었다.
[참고문헌]
CD-ROM 司馬榜目
國朝文科榜目
高宗實錄
國朝文科榜目
高宗實錄
[집필자]
이은영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