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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수(安永綏)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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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공리(孔履)
호(號)동산(東山)
생년1807(순조 6)
졸년1872(고종 9)
시대조선후기
본관순흥(順興)
활동분야예술‧체육 > 서화가
안민행(安敏行)
출신지제주

[상세내용]

안영수(安永綏)
1807년(순조 7)∼1872년(고종 9). 조선 후기 서화가. 자는 공리(孔履)이고 호는 동산(東山)이다.

본관은 순흥(順興)으로 제주에서 안민행(安敏行)의 아들로 태어났다.제주에서 오점(吳霑)을 사사하였고 1834년(순조 34) 갑오(甲午) 식년시(式年試) 생원(生員) 3등 48위로 합격하였다. 문장, 글씨, 그림에 모두 뛰어나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칭찬을 받았다. 다산(茶山)의 맏아들 정학연(丁學淵)과 교유하면서 경세실용(經世實用)과 실사구시(實事求是)의 학문에 눈을 떴으며, 전통 주자학은 멀리하였다.

정약용(丁若庸)의 둘째 아들인 운포(耘逋) 정학유(丁學游), 동번(東樊) 이만용(李晩用) 등과 교유하면서 글씨를 연마하였고, 스승인 오점의 아들 오태직(吳泰稷)과 함께 시(詩), 서(書), 화(畵)에 전념하였다.

여러 차례 문과에 낙방하자 술을 즐기면서 가산을 탕진하였다. 그러나 범속(凡俗)에 얽매이지 않는 호방함이 있었으며, 냉철한 판단력으로 시비(是非)를 분별할 줄 알았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다.

문하에 훌륭한 인재가 많이 배출되어 항일의병운동에 많은 영향력을 미쳤다.

[참고문헌]

심재집
제주사인명사전
증보탐라지

[집필자]

박상수
수정일수정내역
2009-09-302009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