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재중(洪在重)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D64DC7ACC911B1798X0 |
자(字) | 공려(公呂) |
생년 | 1798(정조 22)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남양(南陽[唐]) |
활동분야 | 문신 |

부 | 홍효섭(洪孝燮) |

[상세내용]
홍재중(洪在重)
1798년(정조 22)~미상. 조선 후기 문신. 자는 공려(公呂)이다. 본관은 남양(南陽[唐])이다.
정랑(正郞) 홍우집(洪禹集)의 후손으로, 고조는 홍계억(洪啓億)이고, 증조부는 현감(縣監) 홍소해(洪紹海)이며, 조부는 홍병규(洪秉珪)이다. 부친 진사(進士) 홍효섭(洪孝燮)과 모친 정랑 서정보(徐貞輔)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참봉(參奉) 유한욱(兪漢旭)의 딸이다.
1836년(헌종 2) 인정전(仁政殿)에서 실시된 추도기유생(秋到記儒生)들을 대상으로 한 시험에서 강(講) 분야의 수석을 차지하여 전시(殿試)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았고, 1837년(헌종 3) 식년시 문과에서 갑과 3위로 급제하였다.
1838년(헌종 4) 기우제(祈雨祭) 때 대축(大祝)의 소임을 수행하였는데, 규정대로 시행하지 않아 투옥되어 곤욕을 치렀고, 1841년(헌종 7) 지평(持平)으로 재직하며, 임금에게 상소를 올려 역적 이학수(李鶴秀) 등에 대하여 엄격한 형벌을 적용하도록 건의하였다. 1844년(헌종 10)에는 관록(館祿)에 선발되었다. 1850년(철종 1)에는 양산군수(梁山郡守)로 재직 중이었는데, 경상좌도암행어사(慶尙左道暗行御史) 김세호(金世鎬)를 통해 그의 실정(失政)이 보고되어 탄핵을 받았다. 1852년(철종 3)에는 건릉(健陵) 등의 왕실제사 때 대축으로 참여하여, 품계를 올려 받았다. 아들은 홍세종(洪世鐘)이다.
정랑(正郞) 홍우집(洪禹集)의 후손으로, 고조는 홍계억(洪啓億)이고, 증조부는 현감(縣監) 홍소해(洪紹海)이며, 조부는 홍병규(洪秉珪)이다. 부친 진사(進士) 홍효섭(洪孝燮)과 모친 정랑 서정보(徐貞輔)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참봉(參奉) 유한욱(兪漢旭)의 딸이다.
1836년(헌종 2) 인정전(仁政殿)에서 실시된 추도기유생(秋到記儒生)들을 대상으로 한 시험에서 강(講) 분야의 수석을 차지하여 전시(殿試)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았고, 1837년(헌종 3) 식년시 문과에서 갑과 3위로 급제하였다.
1838년(헌종 4) 기우제(祈雨祭) 때 대축(大祝)의 소임을 수행하였는데, 규정대로 시행하지 않아 투옥되어 곤욕을 치렀고, 1841년(헌종 7) 지평(持平)으로 재직하며, 임금에게 상소를 올려 역적 이학수(李鶴秀) 등에 대하여 엄격한 형벌을 적용하도록 건의하였다. 1844년(헌종 10)에는 관록(館祿)에 선발되었다. 1850년(철종 1)에는 양산군수(梁山郡守)로 재직 중이었는데, 경상좌도암행어사(慶尙左道暗行御史) 김세호(金世鎬)를 통해 그의 실정(失政)이 보고되어 탄핵을 받았다. 1852년(철종 3)에는 건릉(健陵) 등의 왕실제사 때 대축으로 참여하여, 품계를 올려 받았다. 아들은 홍세종(洪世鐘)이다.
[참고문헌]
國朝榜目
縉紳八世譜
哲宗實錄
憲宗實錄
縉紳八世譜
哲宗實錄
憲宗實錄
[집필자]
정병섭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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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