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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채(李相采)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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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숙량(叔亮)
호(號)수졸재(守拙齋)
생년1787(정조 11)
졸년1854(철종 5)
시대조선후기
본관재령(載寧)
활동분야학자 > 유생

[상세내용]

이상채(李相采)
1787년(정조 11)∼1854년(철종 5). 조선 후기 유학자. 자는 숙량(叔亮)이고, 호는 수졸재(守拙齋)이다. 본관은 재령(載寧)이다.

증조부는 이종원(李宗遠)이고, 조부는 이우태(李宇泰)이다. 부친 이광전(李光琠)과 모친 이만흡(李萬熻)의 딸 영천이씨(永川李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조의섭(趙毅燮)의 딸 함안조씨(咸安趙氏)이다.

타고난 성품이 어질고 효성스러웠으며, 묻고 배우기를 좋아하였다.

어려서는 당숙부(堂叔父) 반와(盤窩) 이광진(李光震)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는데, 가르침을 받들어 학문에 힘쓰면서 실천에 노력했다.

김진호(金鎭澔)‧이병하(李秉夏)‧김조운(金祚運)‧김헌수(金憲壽)‧남공수(南公壽) 등과 도의로 교유하였고, 손영민(孫永敏)‧백하운(白河運)‧조광호(趙廣祜)‧이상규(李相奎)‧이상운(李相運) 등과는 서로 학문을 격려하였다. 명승지를 유람하며 견문을 넓히고 널리 교유하여 고을에서 모두 존경하며 부러워하였다.

집안의 크고 작은 일은 모두 부인에게 맡겨 두고, 집안 친척과 같은 연원(淵源) 둔 사림들과 함께 선조(先祖) 이현일(李玄逸)의 신원(伸寃)을 위한 상소를 올려, 1852년(철종 3) 이현일의 벼슬을 회복하게 하였다. 만년에 옛 집을 수리하여 ‘수졸재(守拙齋)’라 편액하고, 역학(易學)‧주자서(朱子書)‧초사(楚辭) 등 여러 서적을 갖추어 놓고 탐독하며, 후생들을 가르치는 데 힘썼다. 선조(先祖)의 유집(遺集)을 수정하여 중간하였으며, 향년 6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슬하에 5녀를 두었고, 종제(從弟) 이상렬(李相烈)의 아들 이부영(李溥榮)을 양자로 들여 대를 이었다.

묘는 저곡(楮谷) 망암산(望巖山)에 있다.

저서로 『수졸재집(守拙齋集)』이 있다.

[참고문헌]

守拙齋集

[집필자]

김경희
수정일수정내역
2010-10-23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