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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중섭(洪重燮)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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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자위(子威)
생년1786(정조 10)
졸년?(미상)
시대조선후기
본관남양(南陽[唐])
활동분야문신
홍수만(洪秀晩)

[상세내용]

홍중섭(洪重燮)
1786년(정조 10)~미상. 조선 후기 문신. 자는 자위(子威)이다. 본관은 남양(南陽[唐])이다. 거주지는 한양(漢陽: 현 서울)이다.

증조부는 홍경하(洪景夏)이고, 조부는 통정대부(通政大夫) 경원진관병마동첨절제사(慶源鎭管兵馬同僉節制使) 홍성연(洪聖淵)이며, 부친은 이조참판(吏曹參判) 홍수만(洪秀晩)이다. 외조부는 윤행원(尹行元)이다.

1827년(순조 27) 증광시 문과에 장원 급제하였다. 관직은 부수찬(副修撰)‧정언(正言) 등을 역임하였고, 품계는 통정대부에 올랐다.

1828년(순조 28)에는 홍문록(弘文錄) 권점(圈點)과 도당록(都堂錄) 권점에서 모두 4점을 받았다. 1829년(순조 29) 예조참판(禮曹參判) 박기수(朴綺壽)가 세자가 순조의 즉위 30년과 보령 40세를 진하하는 하례를 주관하되, 기녀를 참가시켰던 것을 상소로 비판하였다가 전라남도 나주군(羅州郡) 남평현(南平縣)으로 유배를 가게 되었는데, 이때 지평 이정기(李正耆) 등과 함께 용서해줄 것을 청하는 상소를 올렸으나 뜻을 이루지는 못하였다. 같은 해에 죄인을 국문하라는 명을 어겼다가 전라북도 김제군(金堤郡)으로 유배되었다가 풀려났다. 1830년(순조 30) 정언 재임 시절 대사헌(大司憲) 김양순(金陽淳) 등과 함께 합계(合啓)하여 이조원(李肇源)의 옥사를 제대로 밝히지 않은 김노경(金魯敬)을 탄핵하였다. 1831년(순조 31) 문호묘(文祜廟) 건립에 기여한 공로로 통정대부에 가자(加資)되었다.

[참고문헌]

國朝文科榜目
純祖實錄

[집필자]

이은영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