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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복(趙弘復)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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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지중(遲中)
호(號)망운(望雲)
생년1773(영조 49)
졸년1841(헌종 7)
시대조선후기
본관한양(漢陽)
활동분야학자 > 성리학자

[상세내용]

조홍복(趙弘復)
1773년(영조 49)∼1841년(헌종 7). 조선 후기 성리학자. 자는 지중(遲中)이고, 호는 망운(望雲)이다. 본관은 한양(漢陽)이고, 출신지는 경상북도 영양(英陽)이다.

부친 조호신(趙虎臣)과 모친 이구원(李俱遠)의 딸 재령이씨(載寧李氏) 사이에서 2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동생 조남복(趙南復)이 있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경전(經典)과 사서(四書)를 익혔으며, 제자백가(諸子百家) 서적들도 두루 탐독하였다. 문장에도 뛰어나 20세 때 도산문회(陶山文會)에 참가하여 3일 동안 연이어 장원을 하여 『성학십도(聖學十圖)』를 상으로 받았다.

1803년(순조 3) 향시에 1등으로 합격하였으며, 1807년(순조 7) 식년시 생원 3등 37위로 합격하였다. 그러나 벼슬길에 뜻이 없어 과거시험에 더 이상 응시하지 않고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원외랑(員外郞) 강운(姜橒)‧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 변시섬(邊始暹)‧설서(說書) 이가순(李家淳) 등과 교유하며 학문을 토론하였다.

노친 봉양하는 일에 효성을 지극히 하였다. 부친 사후에 묘 곁에 망운정(望雲亭)을 짓고, 그곳에 거처하며 『주서절요(朱書節要)』 등 성리학 서적들을 탐독하면서 후학들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였다.

유고로 4권 2책의 『망운집(望雲集)』이 전한다.

[참고문헌]

CD-ROM 司馬榜目(韓國精神文化硏究院)

[집필자]

정병섭
수정일수정내역
2010-10-23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