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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의(韓用儀)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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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백우(伯羽)
생년1772(영조 48)
졸년?(미상)
시대조선후기
본관청주(淸州)
활동분야문신
한낙속(韓樂俗)

[상세내용]

한용의(韓用儀)
1772년(영조 48)~미상. 조선 후기 문신. 자는 백우(伯羽)이다.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거주지는 한양이다.

증조부는 한사제(韓師悌)이고, 조부는 한정모(韓鼎謨)이며, 부친은 한낙속(韓樂俗)이다. 외조부는 한명훈(韓命勳)이고, 처부는 이명규(李明圭)이다.

1801년(순조 1) 증광시 문과에 병과 7위로 급제하였다. 관직은 문비랑(文備郞)‧울산부위유어사(蔚山府慰諭御史)‧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수찬(修撰)‧교리(校理)‧응교(應敎)‧사간원사간(司諫院司諫) 등을 역임하였다.

1809년(순조 9) 울산부(蔚山府)에 큰 불이 나서 백성의 주택이 불에 타버렸을 때 울산부위유어사로 파견되어 시름에 빠진 백성에게 조정에서 전해주는 별휼전(別恤典)을 나눠주며 위로하고 돌아왔다. 1811년(순조 11) 청나라에 사행(使行)을 떠나는 동지정사(冬至正使) 조윤대(曹允大)와 동지부사(冬至副使) 이문회(李文會)를 도와 서장관(書狀官)으로 사행을 다녀왔다. 1817년(순조 17) 교리 재임 시절 관료들의 승급과 전임을 사사로운 정에 따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청하였다. 1818년(순조 18) 평안북도 영변(寧邊)에 친부를 죽인 죄인 김석언(金石彦)을 영변부사(寧邊府使) 유정양(柳鼎養)이 현장에서 바로 죽여 버린 사건이 일어났다. 이 때 영변부안핵어사(寧邊府按覈御史)로 나갔다 돌아와서 사건에 대한 전말을 장계(狀啓)하였다. 1819년(순조 19) 대사성(大司成) 신재명(申在明)이 토적(土賊)들이 일으킨 난을 평정하는 일에 힘쓰지 않고 개인적인 이익에만 눈이 멀어있자 이에 대해 상소하면서 삭탈관직을 청하였으나, 뜻이 관철되지는 않았다.

[참고문헌]

國朝文科榜目
순조실록

[집필자]

이은영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