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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홍경(鄭鴻慶)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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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치영(穉永)
호(號)운강(雲岡)
생년1768(영조 44)
졸년?(미상)
시대조선후기
본관초계(草溪)
활동분야문신
정성흠(鄭星欽)

[상세내용]

정홍경(鄭鴻慶)
1768년(영조 44)~미상. 조선 후기 문신. 자는 치영(穉永)이고, 호는 운강(雲岡)이다. 본관은 초계(草溪)이고, 거주지는 한양(漢陽)이다.

증조부는 정희보(鄭熙普)이고, 조부는 정륙(鄭)이다. 부친은 정성흠(鄭星欽)이고, 생부는 정찬흠(鄭燦欽)이다. 외조부는 이지회(李之晦)이고, 처부는 황필(黃泌)이다.

1807년(순조 7) 식년시에 진사 3등 38위에 합격하였으며, 1813년(순조 13) 증광시에 을과 5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관직은 지평(持平)‧사간원대사간(司諫院大司諫) 등을 역임하였다.

1812년(순조 12)에 임금이 직접 인정전(仁政殿)에 나아가 춘도기유생(春到記儒生)들을 대상으로 시험을 시행하였는데, 이때 제술(製述)에서 수석을 차지하여 직부전시(直赴殿試)하였다. 1817년(순조 17)에는 사간(司諫) 강준흠(姜浚欽)이 유칠재(柳七在)‧홍찬모(洪燦謨)의 무리를 부추겨 기걸(奇傑)로 삼았으며, 서원을 어지럽게 만든 주동자로 지목하여 먼 지방으로 유배시킬 것을 청하였는데, 임금이 제 눈으로 직접보지 않은 일로 죄인으로 모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며 불허하였다. 이에 강준흠이 변명하는 상소를 하자, 임금이 그에 대해 내린 비답을 보게 하고, 대질할 일이 있는지를 반문하였다. 1822년(순조 22) 홍문록을 시행할 때 추천되었다. 1826년(순조 26) 도당록(都堂錄)을 회권(會圈) 하였는데, 이에 4점을 받았다. 1827년(순조 27) 하례(賀禮)때 좌통례(左通禮)로 참여하여 통정(通政)에 가자되었다.

[참고문헌]


[집필자]

김경희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