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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증(吳泰曾)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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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백소(伯紹)
생년1754(영조 30)
졸년?(미상)
시대조선후기
본관해주(海州)
활동분야문관
오언사(吳彦思)

[상세내용]

오태증(吳泰曾)
1754년(영조 30)~미상. 조선 후기 문관. 자는 백소(伯紹)이다. 본관은 해주(海州)이며, 거주지는 한양이다.

증조부는 오수채(吳遂采)이고, 조부는 오명수(吳命洙)이며, 부친은 통훈대부(通訓大夫) 행활인서별제(行活人署別提) 오언사(吳彦思)이다. 외조부는 임정호(林正浩)이다.

1792년(정조 16) 식년시에 진사 3등 68위로 합격하였다.

1793년(정조 17) 성균관(成均館)에서 제술에 응시하여 급제하였다. 1794년(정조 18) 정시 문과에 병과 2위로 급제하였고, 같은 해 한림(翰林)의 후보자로 낙점되었으며, 규장각 대교(奎章閣待敎)의 후보자로 추천되었다. 1795년(정조 19)에 술을 많이 마셔 입시하라는 왕의 명을 지체하였다가 추고(推考)를 당하였다. 1779년(정조 3)에 일어난 상계군(常溪君) 이담(李湛)의 옥사와 관련하여 강화도에 유배되어 목숨을 건진 정조의 이복형제 은언군(恩彦君) 이인(李䄄)을 처벌하라는 벽파대신들의 끊임없는 시달림에 정조가 궁궐대문을 막도록 하여 신하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는데, 이에 대해 예문관검열(藝文館檢閱)을 역임하던 1796년(정조 20) 신하들의 간언을 들을 것을 청하는 상소를 올려 정조가 받아들였다.

[참고문헌]

正祖實錄

[집필자]

오지혜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