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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후진(沈厚鎭)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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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1754(영조 30)
졸년?(미상)
시대조선후기
본관청송(靑松)
활동분야문신
심중규(沈重奎)

[상세내용]

심후진(沈厚鎭)
1754년(영조 30)~미상. 조선 후기 문신. 본관은 청송(靑松)이고, 거주지는 경기도 수원부(水原府)이다.

증조부는 심재(沈材)이고, 조부는 심운희(沈運熙)이며, 부친은 심중규(沈重奎)이다. 외조부는 이윤기(李胤器)이다.

1795년(정조 19) 정시 문과에 병과 14위로 급제하였다. 관직은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북청부사(北靑府使) 등을 역임하였다.

1806년(순조 6) 1800년(순조 즉위년)에 정조가 죽고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순조가 정순왕후(貞純王后)의 수렴청정(垂簾聽政)으로 정사를 펼쳐나갈 때 영의정에 올라 정권을 장악하고 1801년(순조 1)에 반대파 인물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신유사옥(辛酉邪獄)을 주도한 고 심환지(沈煥之)의 관직을 추탈할 것을 청하였으나, 뜻을 이루지는 못하였다. 1808년(순조 8) 북청부사 시절 함경북도 북청(北靑)과 단천(端川)에서 민란이 일어났을 때 진압하지 못하고 조롱을 받은 죄로 삭직되고 유배되었다. 1815년(순조 15) 임금에게 김경연(金敬淵)‧박승현(朴升鉉)‧김진(金鎭)‧심방(沈鈁)의 잘못을 직간하였다가 관직에서 쫓겨난 조득영(趙得永)과 윤치겸(尹致謙)을 다시 관직으로 불러들일 것을 청하였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같은 해에 영의정 김재찬(金載瓚)을 험담하는 상소문을 올려 영의정을 내쫓으려한 죄로 경상남도 봉화현(奉化縣)에 유배되었다.

[참고문헌]

國朝文科榜目
純祖實錄

[집필자]

이은영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