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귀조(申龜朝)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2E0ADC0C870B1748X0 |
자(字) | 현서(玄瑞) |
생년 | 1748(영조 24)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평산(平山) |
활동분야 | 문신 |

부 | 신사현(申師顯) |

[관련정보]
[상세내용]
신귀조(申龜朝)
1748년(영조 24)∼미상. 조선 후기 문신. 자는 계행(季行)‧현서(玄瑞)이다. 본관은 평산(平山)이다.
증조부는 신치원(申致遠)이고, 조부는 세자시강원필선(世子侍講院弼善) 신수(申燧)이다. 부친 통훈대부(通訓大夫) 전주진관병마절제도위(全州鎭管兵馬節制都尉) 신사현(申師顯)과 모친 홍계인(洪啓人)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형은 신봉조(申鳳朝)이다. 부인은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현정우(玄正宇)의 딸 순천현씨(順天玄氏)이다.
1780년(정조 4) 식년시에 진사로 합격하였고, 1792년(정조 16) 식년시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94년(정조 18)에는 정언(正言)으로 재직하며, 상소를 올려서 『명의록(明義錄)』에 따라 국가의 기강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1800년(정조 24)에는 지평(持平)으로 재직하며, 공조판서(工曹判書) 홍억(洪檍)과 숙천부사(肅川府使) 임장원(任長源)의 잘못을 지적하며 탄핵을 청원하였다. 또한, 당시 천주교의 전파를 간과하였던 양근군수(楊根郡守) 정동간(鄭東幹)을 탄핵하기도 하였다. 그 외에도 강직한 성품으로 직간을 서슴지 않았다.
증조부는 신치원(申致遠)이고, 조부는 세자시강원필선(世子侍講院弼善) 신수(申燧)이다. 부친 통훈대부(通訓大夫) 전주진관병마절제도위(全州鎭管兵馬節制都尉) 신사현(申師顯)과 모친 홍계인(洪啓人)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형은 신봉조(申鳳朝)이다. 부인은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현정우(玄正宇)의 딸 순천현씨(順天玄氏)이다.
1780년(정조 4) 식년시에 진사로 합격하였고, 1792년(정조 16) 식년시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94년(정조 18)에는 정언(正言)으로 재직하며, 상소를 올려서 『명의록(明義錄)』에 따라 국가의 기강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1800년(정조 24)에는 지평(持平)으로 재직하며, 공조판서(工曹判書) 홍억(洪檍)과 숙천부사(肅川府使) 임장원(任長源)의 잘못을 지적하며 탄핵을 청원하였다. 또한, 당시 천주교의 전파를 간과하였던 양근군수(楊根郡守) 정동간(鄭東幹)을 탄핵하기도 하였다. 그 외에도 강직한 성품으로 직간을 서슴지 않았다.
[참고문헌]
CD-ROM 사마방목(司馬榜目)
국조방목(國朝榜目)
국조방목(國朝榜目)
[집필자]
정병섭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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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