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달한(沈達漢)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2ECB2ECD55CB1740X0 |
자(字) | 성통(聖通) |
생년 | 1740(영조 16)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청송(靑松) |
활동분야 | 문신 |

부 | 심해보(沈海普) |

[상세내용]
심달한(沈達漢)
1740년(영조 16)~미상. 조선 후기 문신. 자는 성통(聖通)이다. 본관은 청송(靑松)이다.
증조부는 심세필(沈世弼)이고, 조부는 심일흥(沈一興)이며, 부친은 심해보(沈海普)이다. 외조부는 황최(黃最)이다.
1777년(정조 1) 증광시 문과에 병과 15위로 급제하였다. 관직은 지평(持平)‧정언(正言) 등을 역임하였다.
1792년(정조 16) 좌부승지(左副承旨) 이제만(李濟萬)이 역적 윤구종(尹九宗)을 두둔한 일을 문초하도록 상소하니, 정조가 윤허하였다. 같은 해, 전승지(承旨) 이익운(李益運)의 구원을 청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오히려 시골로 쫓겨났다. 1803년(순조 3)에도 사헌부지평으로 재직 중, 채제공(蔡濟恭)의 성토(聲討) 때 참여하지 않은 죄로 사헌부 지평의 자리에서 쫓겨나 방축향리(放逐鄕里)되었다가 1806년(순조 6) 먼 곳으로 귀양 보내라는 명이 거두어졌다.
증조부는 심세필(沈世弼)이고, 조부는 심일흥(沈一興)이며, 부친은 심해보(沈海普)이다. 외조부는 황최(黃最)이다.
1777년(정조 1) 증광시 문과에 병과 15위로 급제하였다. 관직은 지평(持平)‧정언(正言) 등을 역임하였다.
1792년(정조 16) 좌부승지(左副承旨) 이제만(李濟萬)이 역적 윤구종(尹九宗)을 두둔한 일을 문초하도록 상소하니, 정조가 윤허하였다. 같은 해, 전승지(承旨) 이익운(李益運)의 구원을 청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오히려 시골로 쫓겨났다. 1803년(순조 3)에도 사헌부지평으로 재직 중, 채제공(蔡濟恭)의 성토(聲討) 때 참여하지 않은 죄로 사헌부 지평의 자리에서 쫓겨나 방축향리(放逐鄕里)되었다가 1806년(순조 6) 먼 곳으로 귀양 보내라는 명이 거두어졌다.
[참고문헌]
國朝榜目
正祖實錄
純祖實錄
正祖實錄
純祖實錄
[집필자]
이후남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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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