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대윤(申大尹)
[요약정보]
| UCI | G002+AKS-KHF_13C2E0B300C724B1739X0 |
| 자(字) | 형백(衡伯) |
| 생년 | 1739(영조 15) |
| 졸년 | ?(미상) |
| 시대 | 조선후기 |
| 본관 | 평산(平山) |
| 활동분야 | 문신 |

| 부 | 신시(申是) |

[상세내용]
신대윤(申大尹)
1739년(영조 15)∼미상. 조선 후기 문신. 자는 형백(衡伯)이다. 본관은 평산(平山)이다.
증조부는 신탁(申琢)이고, 조부는 신진하(申鎭夏)이다. 부친 신시(申是)와 모친 윤이손(尹彛遜)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이사좌(李師佐)의 딸이다.
1774년(영조 50) 정시에서 병과로 급제하였다.
1779년(정조 3)에는 김천찰방(金泉察訪)으로 재직 중이었으나,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죄목으로 탄핵을 받았다. 1787년(정조 11)에는 홍문록(弘文錄)에 선발되었다. 1791년(정조 15)에는 헌납(獻納)으로 재직 중이었는데, 죄인 이재간(李在簡)에 대한 상소를 올려서, 그의 가산을 몰수하고 가족들까지도 연좌하기를 청원하였다. 그러나 신대윤(申大尹)의 언사가 지나치다는 지적을 받아서 관직에서 삭직되었다. 1798년(정조 22)에는 북청부사(北靑副使)로 재직할 때 세금을 가중시킨 죄가 드러나게 되어, 유배를 당하기도 하였다.
증조부는 신탁(申琢)이고, 조부는 신진하(申鎭夏)이다. 부친 신시(申是)와 모친 윤이손(尹彛遜)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이사좌(李師佐)의 딸이다.
1774년(영조 50) 정시에서 병과로 급제하였다.
1779년(정조 3)에는 김천찰방(金泉察訪)으로 재직 중이었으나,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죄목으로 탄핵을 받았다. 1787년(정조 11)에는 홍문록(弘文錄)에 선발되었다. 1791년(정조 15)에는 헌납(獻納)으로 재직 중이었는데, 죄인 이재간(李在簡)에 대한 상소를 올려서, 그의 가산을 몰수하고 가족들까지도 연좌하기를 청원하였다. 그러나 신대윤(申大尹)의 언사가 지나치다는 지적을 받아서 관직에서 삭직되었다. 1798년(정조 22)에는 북청부사(北靑副使)로 재직할 때 세금을 가중시킨 죄가 드러나게 되어, 유배를 당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국조방목(國朝榜目)
正祖實錄
正祖實錄
[집필자]
정병섭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