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욱수(徐郁修)
[상세내용]
서욱수(徐郁修)
1738년(영조 14)~미상. 조선 후기 문신. 본관은 대구(大丘)이다.
증조부는 서문제(徐文濟)이고, 조부는 서종대(徐宗大)이며, 부친은 서명화(徐命華)이다. 외조부는 이망지(李望之)이다.
1771년(영조 47) 식년시에 병과 59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정언(正言)을 역임하던 1779년(정조 3)에 심관지(沈觀之)와 윤동섬(尹東暹)을 귀양보내고, 정휘량(鄭翬良)과 원인손(元仁孫)을 추탈(追奪)할 것을 건의하였다가 일개 신하가 쉽사리 판단할 수 없는 문제라 하여 오히려 삭직(削職)되었다. 공조참의(工曹參議)를 역임하던 1796년(정조 20)에 청백리 명단을 올리면서 봉조하(奉朝賀) 이병상(李秉常)과 지사(知事) 신경보(申慶普)를 추천하였다. 같은 해에 사간원대사간(司諫院大司諫)에 제수되었다가 곧 체직(遞職)되었고, 후에도 사간원대사간에 제수됨과 체직됨을 거듭하였다.
증조부는 서문제(徐文濟)이고, 조부는 서종대(徐宗大)이며, 부친은 서명화(徐命華)이다. 외조부는 이망지(李望之)이다.
1771년(영조 47) 식년시에 병과 59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정언(正言)을 역임하던 1779년(정조 3)에 심관지(沈觀之)와 윤동섬(尹東暹)을 귀양보내고, 정휘량(鄭翬良)과 원인손(元仁孫)을 추탈(追奪)할 것을 건의하였다가 일개 신하가 쉽사리 판단할 수 없는 문제라 하여 오히려 삭직(削職)되었다. 공조참의(工曹參議)를 역임하던 1796년(정조 20)에 청백리 명단을 올리면서 봉조하(奉朝賀) 이병상(李秉常)과 지사(知事) 신경보(申慶普)를 추천하였다. 같은 해에 사간원대사간(司諫院大司諫)에 제수되었다가 곧 체직(遞職)되었고, 후에도 사간원대사간에 제수됨과 체직됨을 거듭하였다.
[참고문헌]
正祖實錄
[집필자]
오지혜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