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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익(鄭東翼)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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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남위(南爲)
호(號)오재(鼯齋)
생년1737(영조 13)
졸년1802(순조 2)
시대조선후기
본관청주(淸州)
활동분야학자 > 유생

[상세내용]

정동익(鄭東翼)
1737년(영조 13)∼1802년(순조 2). 조선 후기 유학자. 자는 남위(南爲)이고, 호는 오재(鼯齋)이다.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본적은 경상북도 성주(星州)이다.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후손으로, 부친 정달제(鄭達濟)의 4남 중 3남으로 태어났다. 형 정동섭(鄭東燮)‧정동술(鄭東述)과 동생 정동직(鄭東直)이 있다.

미호(渼湖) 김원행(金元行)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777년(정조 1) 증광시 생원 2등 5위로 합격한 뒤, 영릉참봉(英陵參奉)‧사릉참봉(思陵參奉) 등을 역임하였다.

은퇴 후 낙향하여 오직 시서(詩書)를 즐기며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을 살았다.

저서로 4권의 『오재집(鼯齋集)』이 있는데, 덕수서원(德水書院)에 사액을 내려달라고 청한 「청덕수서원사액(請德水書院賜額)」과 『논어(論語)』의 내용 중 의심나는 내용들을 기록한 「논어차의(論語箚疑)」 등이 실려 있다.

[참고문헌]

承政院日記

[집필자]

유치석
수정일수정내역
2010-10-23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