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이문철(李文喆)

[요약정보]

UCIG002+AKS-KHF_13C774BB38CCA0B1736X0
생년1736(영조 12)
졸년?(미상)
시대조선후기
본관전주(全州)
활동분야무신
이석희(李錫禧)

[상세내용]

이문철(李文喆)
1736년(영조 12)~미상. 조선 후기 무신.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거주지는 한양이다.

부친은 이석희(李錫禧)이다.

1784년(정조 8) 정시 무과에서 병과 320위로 급제하였고, 관직은 김해부사(金海府使)‧경상우도병마절도사(慶尙右道兵馬節度使)‧수원중군(水原中軍)‧어영대장(御營大將) 등을 역임하였다.

1794년(정조 18) 김해부사 재임 시절에 김해 고을을 운영하기 위해 준비한 국가의 돈과 곡식 등을 고을 백성에게 대여해주어 이자를 받았고, 고을 백성의 진휼을 위해 내려준 돈과 부역 가운데 쓰고 남은 3,940냥을 제 멋대로 처분하여 자신의 잇속을 챙기는 등의 행실이 조정에 알려져 평안북도 선천부(宣川府)로 유배되었다. 이후 1802년(순조 2) 유배에서 풀려나 경상우도병마절도사에 제수되었다.

1807년(순조 7) 수원중군에 차임되기 위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청탁을 하였고, 수원중군이 된지 얼마 되지 않아 성첩(城堞)을 수리하고 망가진 군기(軍器)들을 고친 후에 조정에 상(賞)을 청하였다. 이러한 행실이 눈에 거슬렸던 어영대장(御營大將) 이득제(李得濟)는 이문철(李文喆)을 비판하는 상소를 올렸다. 이 일을 두고 장령(掌令) 이약수(李若洙)는 이문철을 수원중군으로 추천한 것은 병조판서(兵曹判書) 한만유(韓晩裕)인데 지금 이득제가 이문철을 차임할 것을 청하는 것은 바로 병조판서 한만유를 비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므로, 무관이 병조판서를 논척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며 삭직시켜줄 것을 청하는 상소를 올렸다. 그러나 이조판서 이시원(李時源)의 체직도 함께 요청한 상소의 내용이 임금의 노여움을 사 이약수는 체직되었고, 병조판서 한만유를 비판하였던 이득제는 삭직되었다.

[참고문헌]

王世子冊封慶龍虎榜
正祖實錄
純祖實錄

[집필자]

이은영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