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평(權坪)
[관련정보]
[상세내용]
권평(權坪)
1734년(영조 10)∼미상. 조선 후기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출신지는 한양(漢陽: 현 서울)이다.
증조부는 권후징(權後徵)이고, 조부는 권세연(權世衍)이다. 부친 권상언(權尙彦)과 모친 윤흥서(尹興緖)의 딸 해남윤씨(海南尹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달성서씨(達城徐氏)이다.
1762년(영조 38) 식년시에 진사 3등 49위로 합격하였고, 1765년(영조 41) 식년시에서 병과 11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관직으로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장령(掌令)‧정언(正言)‧동래부사(東萊副使) 등을 역임하였다.
1774년(영조 50) 음관(蔭官)의 벼슬길을 제한할 것을 청하는 상소를 올렸다. 이는 음관(蔭官)일지라도 나이가 너무 어리거나 벼슬을 할 수 있는 기준에 못 미치는 자는 비록 승전(承傳)이 있다 하더라도 추천할 수 없도록 하여 정사(政事)의 격식(格式)을 보존하라고 청한 것인데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1780년(정조 4) 액례(掖隷)의 폐단을 엄히 단속할 것을 요구하는 상소를 올렸다. 1798년(정조 22) 동래부사로 재직하고 있었는데, 동래부사의 적임자가 아니라는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지평 윤함(尹涵)이 개차(改差))할 것을 요구하여 파직되었다.
증조부는 권후징(權後徵)이고, 조부는 권세연(權世衍)이다. 부친 권상언(權尙彦)과 모친 윤흥서(尹興緖)의 딸 해남윤씨(海南尹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달성서씨(達城徐氏)이다.
1762년(영조 38) 식년시에 진사 3등 49위로 합격하였고, 1765년(영조 41) 식년시에서 병과 11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관직으로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장령(掌令)‧정언(正言)‧동래부사(東萊副使) 등을 역임하였다.
1774년(영조 50) 음관(蔭官)의 벼슬길을 제한할 것을 청하는 상소를 올렸다. 이는 음관(蔭官)일지라도 나이가 너무 어리거나 벼슬을 할 수 있는 기준에 못 미치는 자는 비록 승전(承傳)이 있다 하더라도 추천할 수 없도록 하여 정사(政事)의 격식(格式)을 보존하라고 청한 것인데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1780년(정조 4) 액례(掖隷)의 폐단을 엄히 단속할 것을 요구하는 상소를 올렸다. 1798년(정조 22) 동래부사로 재직하고 있었는데, 동래부사의 적임자가 아니라는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지평 윤함(尹涵)이 개차(改差))할 것을 요구하여 파직되었다.
[참고문헌]
[집필자]
김경희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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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