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이갑룡(李甲龍)

[요약정보]

UCIG002+AKS-KHF_13C774AC11B8E1B1734X0
자(字)우린(于鱗)
호(號)남계(南溪)
생년1734(영조 10)
졸년1799(정조 23)
시대조선후기
본관성주(星州)
활동분야문신 > 문신

[상세내용]

이갑룡(李甲龍)
1734년(영조 10)∼1799년(정조 23). 조선 후기 문신‧유학자. 자는 우린(于鱗)이고, 호는 남계(南溪)이다. 본관은 성주(星州)이고, 출신지는 경상남도 진주(晉州)이다.

매월당(梅月堂) 이하생(李賀生)의 후손으로, 고조는 이규충(李奎忠), 증조부는 이분국(李芬國), 조부는 증병조참판(贈兵曹參判) 이윤기(李胤紀)이다. 부친 통덕랑(通德郞) 이집(李)과 모친 진주강씨(晉州姜氏) 강창로(姜昌老)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태와(台窩) 하필청(河必淸)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15세 때 이미 경전과 사서(史書)를 두루 익혔다.

1762년(영조 38) 식년시 병과 14위로 급제한 후, 성균관에서 수학하면서 고요(高繇) 김한동(金翰東) 등과 교유하였다. 1784년(정조 8) 정의현감 재임 시절에 어진 정치와 청렴결백으로 칭송을 받았으나 전임자가 관청의 말[馬]을 빼돌린 것을 확인하고 자신의 봉급으로 충당하였다가 주변의 무고로 억울하게 국문(鞠問)을 당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평소의 청렴결백을 인정받아 곧 석방되었다.

1797년(정조 21) 장령(掌令)에 임명되었으나 사직하고 후학 양성에 매진하였다. 저서로 3권 1책의 『남계집(南溪集)』이 있다.

[참고문헌]

南溪集

[집필자]

정병섭
수정일수정내역
2010-10-23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2010-12-30문과방목를 참고하여 본관을 성산(星山)에서 성주(星州)로 수정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