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상(趙貞相)
[상세내용]
조정상(趙貞相)
1727년(영조 3)~미상. 조선 후기 문신. 본관은 한양(漢陽)이다.
증조부는 조관(趙琯)이고, 조부는 조석제(趙錫悌)이다. 부친은 조래한(趙來漢)이고, 모친은 윤이주(尹以周)의 딸이며, 부인은 이대유(李大愈)의 딸이다.
1763년(영조 39) 증광시 문과에서 병과 26위로 급제하였고, 같은 해 11월에 승정원가주서(承政院假注書)로 임명되었다. 1770년(영조 46) 11월에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이 되었고, 이후 성균관직강(成均館直講)‧병조좌랑(兵曹佐郞) 등을 역임하였다.
1772년(영조 48) 3월에 품고 있는 생각을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장기현(長鬐縣)에 유배되었다가 같은 해 4월에 풀려났다. 1778년(정조 2) 10월에 예조좌랑(禮曹佐郞)으로 임명되었고, 이후 고창현감(高敞縣監)‧곤양군수(昆陽郡守)‧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 등을 역임하였다.
1788년(정조 12) 10월에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으로 임명되었고, 같은 해 11월 윤시동(尹蓍東)이 기강을 무너뜨린 일로 상소를 올렸으나 상소에서 꾸짖는 말을 함부로 하였다는 혐의를 받아서 체차(遞差)되었다.
증조부는 조관(趙琯)이고, 조부는 조석제(趙錫悌)이다. 부친은 조래한(趙來漢)이고, 모친은 윤이주(尹以周)의 딸이며, 부인은 이대유(李大愈)의 딸이다.
1763년(영조 39) 증광시 문과에서 병과 26위로 급제하였고, 같은 해 11월에 승정원가주서(承政院假注書)로 임명되었다. 1770년(영조 46) 11월에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이 되었고, 이후 성균관직강(成均館直講)‧병조좌랑(兵曹佐郞) 등을 역임하였다.
1772년(영조 48) 3월에 품고 있는 생각을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장기현(長鬐縣)에 유배되었다가 같은 해 4월에 풀려났다. 1778년(정조 2) 10월에 예조좌랑(禮曹佐郞)으로 임명되었고, 이후 고창현감(高敞縣監)‧곤양군수(昆陽郡守)‧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 등을 역임하였다.
1788년(정조 12) 10월에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으로 임명되었고, 같은 해 11월 윤시동(尹蓍東)이 기강을 무너뜨린 일로 상소를 올렸으나 상소에서 꾸짖는 말을 함부로 하였다는 혐의를 받아서 체차(遞差)되었다.
[참고문헌]
國朝文科榜目
英祖實錄
正祖實錄
承政院日記
英祖實錄
正祖實錄
承政院日記
[집필자]
노인환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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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