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안(洪景顔)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D64DACBDC548B1724X0 |
자(字) | 희인(希仁) |
생년 | 1724(경종 4)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남양(南陽[唐])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상세내용]
홍경안(洪景顔)
1724년(경종 4)∼미상. 조선 중기 문신. 자는 희인(希仁)이다. 본관은 남양(南陽[唐])이다.
익녕부원군(益寧府院君) 홍서봉(洪瑞鳳)의 5대손으로, 부친 홍응운(洪應運)과 모친 임이원(任履元)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1759년(영조 35)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62년(영조 38) 주서와 정언을 지냈으며, 이때 주전(鑄錢)의 폐단을 지적하고 이조판서 김상복(金相福)을 탄핵하였다. 1765년(영조 41) 이후 정언‧부수찬(副修撰)‧교리(校理)‧사서(司書)‧헌납 등을 역임하였다. 대신(臺臣)으로 재직할 때 중의(仲義)의 사건에 참여하지 않아 관직 명단에서 삭출당하였으나 다시 서용되어 부교리에 임명되었다. 1771년(영조 47)부터 수찬‧사간(司諫)‧승지 등을 지냈다.
익녕부원군(益寧府院君) 홍서봉(洪瑞鳳)의 5대손으로, 부친 홍응운(洪應運)과 모친 임이원(任履元)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1759년(영조 35)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62년(영조 38) 주서와 정언을 지냈으며, 이때 주전(鑄錢)의 폐단을 지적하고 이조판서 김상복(金相福)을 탄핵하였다. 1765년(영조 41) 이후 정언‧부수찬(副修撰)‧교리(校理)‧사서(司書)‧헌납 등을 역임하였다. 대신(臺臣)으로 재직할 때 중의(仲義)의 사건에 참여하지 않아 관직 명단에서 삭출당하였으나 다시 서용되어 부교리에 임명되었다. 1771년(영조 47)부터 수찬‧사간(司諫)‧승지 등을 지냈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國朝榜目
萬姓大同譜
國朝榜目
萬姓大同譜
[집필자]
김혜영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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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3 | 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