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몽화(金夢華)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E40BABDD654B1723X0 |
자(字) | 성민(聖民) |
호(號) | 칠암(七巖) |
생년 | 1723(경종 3) |
졸년 | 1792(정조 16)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선산(善山)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관련정보]
[상세내용]
김몽화(金夢華)
1723년(경종 3)∼1792년(정조 16). 조선 중기 문신. 자는 성민(聖民)이고, 호는 칠암(七巖)이다. 본관은 선산(善山)이고, 출신지는 경상북도 구미시(龜尾市) 선산읍(善山邑)이다.
증조부는 김상주(金相胄)이고, 조부는 김형섭(金亨燮)이다. 부친 김유수(金裕壽)와 모친 이석망(李碩望)의 딸 한산이씨(韓山李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형 김몽의(金夢儀)가 있다.
청대(淸臺) 권상일(權相一)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754년(영조 30) 증광시 생원 3등 37위로 합격하였으며, 1754년(영조 30) 증광시 병과 12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1789년(정조 13)에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오르며, 부총관 및 한성부좌윤(漢城府左尹)과 우윤(右尹)을 제수받으나 사양하였다.
저서로 1901년(광무 5) 후손 김준원(金駿遠)이 편집 간행한 『칠암문집(七巖文集)』이 있는데, 이 가운데 시는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시에 차운한 것과 퇴계를 존경하고 사모하는 시가 여럿 있으며, 「명명덕(明明德)」‧「자탄이수(自歎二首)」와 같은 시에서는 공부를 하는 동안 느낄 수 있는 방황과 고뇌를 표현하였다. 상소문은 대체로 벼슬을 사양한다는 글이고, 잡저(雜著)에는 「고성기행록(高城記行錄)」‧「강세작전(康世爵傳)」‧「유설악록(遊雪嶽錄)」 등이 있는데, 그 가운데 「유설악록(遊雪嶽錄)」은 1787년(정조 11) 양양군수(襄陽郡守)로 있을 때, 당시 관동관찰사로 있던 해석(海石) 김재찬(金載瓚)과 인제군수(麟蹄郡守) 오원모(吳遠謨)와 함께 설악산을 돌아다니며 느낀 아름다움과 특히 비선대(飛仙臺)‧와선대(臥仙臺)‧사미대(沙彌臺)의 절경을 기록한 것이다. 산수를 즐기는 도중에도 산의 본체와 물의 작용에서 깨달음을 얻어, 자연을 어질고 정직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학문의 바탕으로 삼았다.
증조부는 김상주(金相胄)이고, 조부는 김형섭(金亨燮)이다. 부친 김유수(金裕壽)와 모친 이석망(李碩望)의 딸 한산이씨(韓山李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형 김몽의(金夢儀)가 있다.
청대(淸臺) 권상일(權相一)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754년(영조 30) 증광시 생원 3등 37위로 합격하였으며, 1754년(영조 30) 증광시 병과 12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1789년(정조 13)에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오르며, 부총관 및 한성부좌윤(漢城府左尹)과 우윤(右尹)을 제수받으나 사양하였다.
저서로 1901년(광무 5) 후손 김준원(金駿遠)이 편집 간행한 『칠암문집(七巖文集)』이 있는데, 이 가운데 시는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시에 차운한 것과 퇴계를 존경하고 사모하는 시가 여럿 있으며, 「명명덕(明明德)」‧「자탄이수(自歎二首)」와 같은 시에서는 공부를 하는 동안 느낄 수 있는 방황과 고뇌를 표현하였다. 상소문은 대체로 벼슬을 사양한다는 글이고, 잡저(雜著)에는 「고성기행록(高城記行錄)」‧「강세작전(康世爵傳)」‧「유설악록(遊雪嶽錄)」 등이 있는데, 그 가운데 「유설악록(遊雪嶽錄)」은 1787년(정조 11) 양양군수(襄陽郡守)로 있을 때, 당시 관동관찰사로 있던 해석(海石) 김재찬(金載瓚)과 인제군수(麟蹄郡守) 오원모(吳遠謨)와 함께 설악산을 돌아다니며 느낀 아름다움과 특히 비선대(飛仙臺)‧와선대(臥仙臺)‧사미대(沙彌臺)의 절경을 기록한 것이다. 산수를 즐기는 도중에도 산의 본체와 물의 작용에서 깨달음을 얻어, 자연을 어질고 정직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학문의 바탕으로 삼았다.
[참고문헌]
[집필자]
박경이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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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3 | 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