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응룡(池應龍)
[요약정보]
| UCI | G002+AKS-KHF_13C9C0C751B8E1B1722X0 |
| 자(字) | 경첨(景瞻) |
| 생년 | 1722(경종 2) |
| 졸년 | ?(미상) |
| 시대 | 조선후기 |
| 본관 | 충주(忠州) |
| 활동분야 | 문신 |

| 부 | 지만유(池萬游) |

[상세내용]
지응룡(池應龍)
1722년(경종 2)~미상. 조선 중기 문신. 자는 경첨(景瞻)이다. 본관은 충주(忠州)이고, 출신지는 충청북도 청원군(淸原郡) 가덕면(加德面)이다. 조부는 지광일(池光日)이고, 부친은 지만유(池萬游)이다.
1752년(영조 28) 영조(英祖)가 직접 관학(官學) 유생(幼生)들을 상대로 실시한 명경시에서 이제해(李濟海)와 함께 전시(殿試)에 곧 바로 응할 수 있는 자격을 받았으며, 같은 해 정시 문과에서 병과 21위로 급제했다.
이후에 각 도의 역참(驛站)을 관리하던 관직인 찰방(察訪)을 지냈고, 1754년(영조 30) 외교를 담당하던 승문원(承文院)의 새로운 권록(圈錄)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정언(正言) 남태저(南泰著)가 지응룡(池應龍)이 청탁을 통해 승문원의 권록에 이름이 올라갔다며, 박도천(朴道天) 등 5인을 대신 올릴 것을 주장하면서 권록에서 탈락되었다. 또 1763년(영조 39)에 임희효(任希孝)와 함께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으로 임명되었으나, 1764년(영조 40) 지방의 한미한 집안이어서 대선(臺選)인 사헌부지평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집의 임희교(任希敎)의 주청으로 파직되었다. 그러나 이듬해인 1765년(영조 41)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으로 임명되었다.
1752년(영조 28) 영조(英祖)가 직접 관학(官學) 유생(幼生)들을 상대로 실시한 명경시에서 이제해(李濟海)와 함께 전시(殿試)에 곧 바로 응할 수 있는 자격을 받았으며, 같은 해 정시 문과에서 병과 21위로 급제했다.
이후에 각 도의 역참(驛站)을 관리하던 관직인 찰방(察訪)을 지냈고, 1754년(영조 30) 외교를 담당하던 승문원(承文院)의 새로운 권록(圈錄)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정언(正言) 남태저(南泰著)가 지응룡(池應龍)이 청탁을 통해 승문원의 권록에 이름이 올라갔다며, 박도천(朴道天) 등 5인을 대신 올릴 것을 주장하면서 권록에서 탈락되었다. 또 1763년(영조 39)에 임희효(任希孝)와 함께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으로 임명되었으나, 1764년(영조 40) 지방의 한미한 집안이어서 대선(臺選)인 사헌부지평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집의 임희교(任希敎)의 주청으로 파직되었다. 그러나 이듬해인 1765년(영조 41)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으로 임명되었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집필자]
이민재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