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대수(申大脩)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2E0B300C218B1722X0 |
자(字) | 유민(幼敏) |
생년 | 1722(경종 2)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평산(平山) |
활동분야 | 문신 |

부 | 신익(申) |

[상세내용]
신대수(申大脩)
1722년(경종 2)∼미상. 조선 중기 문신. 자는 유민(幼敏)이다. 본관은 평산(平山)이다.
증조부는 신계(申繼)이고, 조부는 신한장(申漢章)이다. 부친 신익(申{日+翼})과 모친 심정황(沈廷黃)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조탱(趙樘)의 딸이다.
1744년(영조 20) 춘당대시에서 병과로 문과 급제하였다.
1754년(영조 30)에는 지평(持平)에 임명되었다. 이후 윤광찬(尹光纘)과 최재흥(崔載興)의 죄목을 들춰내고, 최재흥의 서연관(書筵官) 직책을 개정토록 건의하였는데, 붕당에 치중하여 간언을 올렸다는 지적을 받아서 관직을 삭탈 당하였다. 1768년(영조 44)에는 사면이 되어서, 안정인(安正仁) 등과 함께 장령(掌令)에 임명되었다. 1769년(영조 45)에는 임금의 하명에 대해서 너무 지나치다는 상소를 올렸다가, 재차 임금의 진노를 사게 되어 진도군(珍島郡)에 유배되었다. 이후 사면이 되었지만, 1772년(영조 48)에는 임금을 배알하지 않았다는 죄목을 얻어서 재차 기장현(機張縣)에 유배되었다.
증조부는 신계(申繼)이고, 조부는 신한장(申漢章)이다. 부친 신익(申{日+翼})과 모친 심정황(沈廷黃)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조탱(趙樘)의 딸이다.
1744년(영조 20) 춘당대시에서 병과로 문과 급제하였다.
1754년(영조 30)에는 지평(持平)에 임명되었다. 이후 윤광찬(尹光纘)과 최재흥(崔載興)의 죄목을 들춰내고, 최재흥의 서연관(書筵官) 직책을 개정토록 건의하였는데, 붕당에 치중하여 간언을 올렸다는 지적을 받아서 관직을 삭탈 당하였다. 1768년(영조 44)에는 사면이 되어서, 안정인(安正仁) 등과 함께 장령(掌令)에 임명되었다. 1769년(영조 45)에는 임금의 하명에 대해서 너무 지나치다는 상소를 올렸다가, 재차 임금의 진노를 사게 되어 진도군(珍島郡)에 유배되었다. 이후 사면이 되었지만, 1772년(영조 48)에는 임금을 배알하지 않았다는 죄목을 얻어서 재차 기장현(機張縣)에 유배되었다.
[참고문헌]
國朝文科榜目
英祖實錄
英祖實錄
[집필자]
정병섭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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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