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선(李益烍)
[요약정보]
| UCI | G002+AKS-KHF_13C774C775C120B1722X0 |
| 자(字) | 자선(子宣) |
| 생년 | 1722(경종 2) |
| 졸년 | ?(미상) |
| 시대 | 조선후기 |
| 본관 | 전주(全州) |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관련정보]
[상세내용]
이익선(李益烍)
1722년(경종 2)∼미상. 조선 중기 문신. 자는 자선(子宣)이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증조부는 해령군(海寧君) 이급(李伋)이고, 조부는 광천정(光川正) 이정(李渟)이다. 부친 평원군(平原君) 이표(李標)와 모친 송응조(宋應趙)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1761년(영조 37) 정시문과에서 병과로 급제하였다. 1763년(영조 39) 이후 시강원 설서‧정언‧지평 등을 역임하였으나, 조참(朝參)에 늦게 참석하였다가 이양수(李養遂)‧정창순(鄭昌順) 등과 함께 유배되었다. 그 후 다시 서용되어 지평을 지냈으며, 1771년(영조 47) 부교리 재직 시절 사간 이적보(李迪輔)의 탄핵을 받았다. 1771년(영조 47) 수찬이 되었으며 그해 삼사(三司에서 합계하여 여선형(呂善亨)과 사도세자의 서자(庶子)인 은언군(恩彦君)을 왕법으로 다스릴 것을 주장하였다. 1783년(정조 7)부터 1787년(정조 11)까지 대사간(大司諫)을 연임하였다.
증조부는 해령군(海寧君) 이급(李伋)이고, 조부는 광천정(光川正) 이정(李渟)이다. 부친 평원군(平原君) 이표(李標)와 모친 송응조(宋應趙)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1761년(영조 37) 정시문과에서 병과로 급제하였다. 1763년(영조 39) 이후 시강원 설서‧정언‧지평 등을 역임하였으나, 조참(朝參)에 늦게 참석하였다가 이양수(李養遂)‧정창순(鄭昌順) 등과 함께 유배되었다. 그 후 다시 서용되어 지평을 지냈으며, 1771년(영조 47) 부교리 재직 시절 사간 이적보(李迪輔)의 탄핵을 받았다. 1771년(영조 47) 수찬이 되었으며 그해 삼사(三司에서 합계하여 여선형(呂善亨)과 사도세자의 서자(庶子)인 은언군(恩彦君)을 왕법으로 다스릴 것을 주장하였다. 1783년(정조 7)부터 1787년(정조 11)까지 대사간(大司諫)을 연임하였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正祖實錄
國朝榜目
正祖實錄
國朝榜目
[집필자]
김혜영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10-10-23 | 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