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행(李普行)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74BCF4D589B1718X0 |
자(字) | 이보(易甫) |
생년 | 1718(숙종 44) |
졸년 | 1787(정조 11)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용인(龍仁)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관련정보]
[상세내용]
이보행(李普行)
1718년(숙종 44)∼1787년(정조 11). 조선 중기 문신. 자는 이보(易甫)이다. 본관은 용인(龍仁)이다.
증조부는 이윤악(李胤岳)이고, 조부는 이세운(李世雲)이다. 부친 이의하(李宜夏)와 모친 김석창(金錫昌)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1771년(영조 47) 정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정조가 대향(大享)을 지낼 때 예모관(禮貌官)을 지냈으며, 1776년(영조 52) 승지로 재직하면서 국왕에게 궁실의 사치를 절검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1778년(정조 2) 수어청(守禦廳)과 총융청(摠戎廳)을 합치는 것에 대한 대신들의 논의가 있자 양청 혁파를 주장하였다. 이후 대사성‧대사간(大司諫)‧동지경연‧대사헌(大司憲) 등을 지냈다. 홍낙순‧홍계능과 연관된 서명응을 벌 할 것을 주장하였다가 도리어 책망을 받아 추자도(楸子島)에 정배되어 죽었다.
증조부는 이윤악(李胤岳)이고, 조부는 이세운(李世雲)이다. 부친 이의하(李宜夏)와 모친 김석창(金錫昌)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1771년(영조 47) 정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정조가 대향(大享)을 지낼 때 예모관(禮貌官)을 지냈으며, 1776년(영조 52) 승지로 재직하면서 국왕에게 궁실의 사치를 절검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1778년(정조 2) 수어청(守禦廳)과 총융청(摠戎廳)을 합치는 것에 대한 대신들의 논의가 있자 양청 혁파를 주장하였다. 이후 대사성‧대사간(大司諫)‧동지경연‧대사헌(大司憲) 등을 지냈다. 홍낙순‧홍계능과 연관된 서명응을 벌 할 것을 주장하였다가 도리어 책망을 받아 추자도(楸子島)에 정배되어 죽었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正祖實錄
國朝榜目
正祖實錄
國朝榜目
[집필자]
김혜영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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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3 | 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