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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휴(李用休)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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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경명(景命)
호(號)혜환재(惠寰齋)
생년1708(숙종 34)
졸년1782(정조 6)
시대조선후기
본관여주(驪州)
활동분야학자 > 유생
이기(李沂)
저서『탄만집(𢾡𢿜集)』
저서『혜환시초』
저서『혜환잡저』

[상세내용]

이용휴(李用休)
1708년(숙종 34)∼1782년(정조 6). 조선 중기의 학자. 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경명(景命), 호는 혜환재(惠寰齋).

이기(李沂)의 아들이며, 이잠(李潛)의 조카로 실학의 대가 이가환(李家煥)의 아버지이다. 작은아버지 이익(李瀷)의 문하에서 배웠다.

일찍이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과거를 보지 않고, 시속의 풍조를 벗어나 경전에 모법을 두고 고인지법(古人之法)에 맞는 문장을 이룩하는 데 모든 노력을 쏟았다. 음보(蔭補)로 벼슬이 첨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그의 작품은 자기 가통의 작품을 따라 천문‧지리‧병농 등 실학의 학문에 조예가 깊었으므로, 그와같은 사상에 입각한 것이 많다. 「해서개자(海西丐者)」라는 한문소설에서 거지〔丐乞〕가 순진하고 거짓없는 마음씨를 가졌다고 한데 이어서, 거친 들판, 옛 산협에 숨은 선비 또는 농촌에서 일하는 이들 가운데에 참된 사람이 있으리라고 하여 하층민의 입장에서 전(傳)을 썼다.

이는 전의 본래적 성격과 다른 것이었다. 그의 문학관은, 문학의 영달을 위한 수단이 아닌 문학 그 자체의 진실을 추구하자는 것이었고, 주자학적 권위와 구속을 부정하는 자세를 취하였다.

그러나 사상적 고민이 깊지 않은 한계를 지녔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는 문인의 사명과 창작하는 방법을 진지하게 생각하였고, 당대 30여년을 문장가로서 남인계의 문권을 잡았다.

작품으로는 신광수(申光洙)가 연천고을 원으로 부임할 때 지어 준 「송신사군광수지임연천(送申使君光洙之任漣川)」 등이 있고, 저서로는 『탄만집(𢾡𢿜集)』『혜환시초』 등과 『혜환잡저』가 있다.

[참고문헌]

𢾡𢿜集
惠寰詩鈔
惠寰雜著(李敦衡本)
星湖集
한국문학통사 3(조동일, 지식산업사, 1984)

[집필자]

고경식(高敬植)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