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점(趙東漸)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870B3D9C810B1700X0 |
자(字) | 성진(聖進) |
생년 | 1700(숙종 26) |
졸년 | 1755(영조 31)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평양(平壤) |
활동분야 | 무신 |

부 | 조빈(趙儐) |

[상세내용]
조동점(趙東漸)
1700년(숙종 26)~1755년(영조 31). 조선 중기 무신. 자는 성진(聖進)이다. 본관은 평양(平壤)이고, 거주지는 한양이다.
부친은 가의대부(嘉義大夫) 행수원도호부사(行水原都護府使) 겸 경기우방어사(兼京畿右防禦使) 조빈(趙儐)이다. 동생은 조동겸(趙東謙)이고, 서제(庶弟)는 조동형(趙東亨)이다.
1728년(영조 4) 별시 무과에 병과 276위로 급제하였다. 관직은 경상우도병마절도사(慶尙右道兵馬節度使)‧선전관(宣傳官)‧경기수군절도사(京畿水軍節度使)‧함경북도병마절도사(咸鏡北道兵馬節度使)‧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어영대장(御營大將)‧포도대장(捕盜大將) 등을 역임하였다.
1753년(영조 29) 도성(都城) 안 사족(士族)들 집에까지 도둑이 들자 도성 안의 도둑들을 전부 잡아들이라는 명을 받았다. 1754년(영조 30) 왕세자(王世子)가 영남지방에서 거둬들인 곡식 3만 섬과 호남지방에서 거둬들인 곡식 2만 섬을 점차적으로 경상남도 통영(統營)으로 옮기기로 결심하도록 하는데 결정적인 조언을 하였다. 1755년(영조 31) 포도대장에 특별히 제수되었으나 사촌 형제인 조동정(趙東鼎)이 옥사하자 이에 놀라 병이 났다. 그러자 평소 그를 아끼던 임금이 병을 치료할 약(藥)을 보내주었다. 그러나 7일간 입에다 음식을 먹지 않아 굶어죽었다. 이를 불쌍히 여긴 임금이 직접 글을 지어 보내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
부친은 가의대부(嘉義大夫) 행수원도호부사(行水原都護府使) 겸 경기우방어사(兼京畿右防禦使) 조빈(趙儐)이다. 동생은 조동겸(趙東謙)이고, 서제(庶弟)는 조동형(趙東亨)이다.
1728년(영조 4) 별시 무과에 병과 276위로 급제하였다. 관직은 경상우도병마절도사(慶尙右道兵馬節度使)‧선전관(宣傳官)‧경기수군절도사(京畿水軍節度使)‧함경북도병마절도사(咸鏡北道兵馬節度使)‧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어영대장(御營大將)‧포도대장(捕盜大將) 등을 역임하였다.
1753년(영조 29) 도성(都城) 안 사족(士族)들 집에까지 도둑이 들자 도성 안의 도둑들을 전부 잡아들이라는 명을 받았다. 1754년(영조 30) 왕세자(王世子)가 영남지방에서 거둬들인 곡식 3만 섬과 호남지방에서 거둬들인 곡식 2만 섬을 점차적으로 경상남도 통영(統營)으로 옮기기로 결심하도록 하는데 결정적인 조언을 하였다. 1755년(영조 31) 포도대장에 특별히 제수되었으나 사촌 형제인 조동정(趙東鼎)이 옥사하자 이에 놀라 병이 났다. 그러자 평소 그를 아끼던 임금이 병을 치료할 약(藥)을 보내주었다. 그러나 7일간 입에다 음식을 먹지 않아 굶어죽었다. 이를 불쌍히 여긴 임금이 직접 글을 지어 보내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
[참고문헌]
戊申別試文武科榜目
英祖實錄
英祖實錄
[집필자]
이은영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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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