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억증(韓億增)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D55CC5B5C99DB1698X0 |
자(字) | 대숙(大淑) |
생년 | 1698(숙종 24)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청주(淸州)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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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내용]
한억증(韓億增)
1698년(숙종 24)∼미상. 조선 중기 문신. 자는 대숙(大淑)이다. 본관은 청주(淸州)이다.
증조부는 한석준(韓碩俊)이고, 조부는 첨지중추부사 한빈(韓彬)이다. 부친 한중희(韓重熙)와 모친 김경(金澋)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처부는 권감(權瑊)이다.
1733년(영조 9)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33년 사간원정언으로서 노론 당론을 펴던 대사간(大司諫) 김치후(金致垕)를 변론하다가 해도(海島)로 유배되었다. 그 후 다시 기용되어 지평‧헌납‧수찬 등 언론을 담당하면서 노론 당론을 행사하여 소론 이광의(李匡誼)와 민창수(閔昌洙)의 석방을 반대하다가 삭탈관작을 당하였으나 다시 서용되었다. 제주(濟州)에 큰 가뭄이 들었을 때 감진어사(監賑御史)로 파견되었다가 진휼을 위한 제주목사에 발탁된 후 승지‧대사간 등을 역임하였다.
증조부는 한석준(韓碩俊)이고, 조부는 첨지중추부사 한빈(韓彬)이다. 부친 한중희(韓重熙)와 모친 김경(金澋)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처부는 권감(權瑊)이다.
1733년(영조 9)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33년 사간원정언으로서 노론 당론을 펴던 대사간(大司諫) 김치후(金致垕)를 변론하다가 해도(海島)로 유배되었다. 그 후 다시 기용되어 지평‧헌납‧수찬 등 언론을 담당하면서 노론 당론을 행사하여 소론 이광의(李匡誼)와 민창수(閔昌洙)의 석방을 반대하다가 삭탈관작을 당하였으나 다시 서용되었다. 제주(濟州)에 큰 가뭄이 들었을 때 감진어사(監賑御史)로 파견되었다가 진휼을 위한 제주목사에 발탁된 후 승지‧대사간 등을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國朝榜目
國朝榜目
[집필자]
김성욱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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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3 | 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