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환(李台煥)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74D0DCD658B1697X0 |
자(字) | 공섭(公燮) |
호(號) | 성헌(惺軒) |
생년 | 1697(숙종 23) |
졸년 | 1774(영조 50)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재령(載寧)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상세내용]
이태환(李台煥)
1697년(숙종 23)∼1774년(영조 50). 조선 중기 문신‧유학자. 자는 공섭(公燮)이고, 호는 성헌(惺軒)이다. 본관은 재령(載寧)이며, 출신지는 경상북도 영덕군(盈德郡)이다.
부친은 이은(李檼)이다.
1733년(영조 9) 영해(寧海) 지역의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다. 1738년(영조 14)에 서원(書院)철폐령이 있자 임사자(任事者)로 추대되었는데, 의리(義理)로써 논쟁해야 함을 주장하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높은 학문과 덕망으로 인해 안동부사에게 초빙되어 안동훈장(安東訓長)과 향교(鄕校)와 서원의 원장(院長)을 역임하면서 정주학(程朱學)을 강학하며 후진을 양성하였다. 김성탁(金聖鐸)‧김낙행(金樂行)‧이상정(李象靖)‧이유원(李猷遠) 등과 교유하며 학문을 논하였다.
저서로 『성헌집(惺軒集)』이 있다.
부친은 이은(李檼)이다.
1733년(영조 9) 영해(寧海) 지역의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다. 1738년(영조 14)에 서원(書院)철폐령이 있자 임사자(任事者)로 추대되었는데, 의리(義理)로써 논쟁해야 함을 주장하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높은 학문과 덕망으로 인해 안동부사에게 초빙되어 안동훈장(安東訓長)과 향교(鄕校)와 서원의 원장(院長)을 역임하면서 정주학(程朱學)을 강학하며 후진을 양성하였다. 김성탁(金聖鐸)‧김낙행(金樂行)‧이상정(李象靖)‧이유원(李猷遠) 등과 교유하며 학문을 논하였다.
저서로 『성헌집(惺軒集)』이 있다.
[참고문헌]
嶠南誌
盈德郡誌
盈德郡誌
[집필자]
김경희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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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3 | 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