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광우(玄光宇)
[요약정보]
| UCI | G002+AKS-KHF_13D604AD11C6B0B1696X0 |
| 자(字) | 여부(汝夫) |
| 생년 | 1696(숙종 22) |
| 졸년 | ?(미상) |
| 시대 | 조선중기 |
| 본관 | 순천(順天) |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관련정보]
[상세내용]
현광우(玄光宇)
1696년(숙종 22)∼미상. 조선 중기 문신. 자는 여부(汝夫)이고, 본관은 순천(順天)이다.
증조부는 현태시(玄太始)이고, 조부는 현두찬(玄斗燦)이다. 부친은 현명익(玄溟翼)이고, 모친은 여필흥(呂必興)의 딸이다. 생부는 현서익(玄瑞翼)이고, 처부는 이화신(李華臣)이다.
1743년(영조 19)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 주로 언론직을 역임하였다. 1774년(영조 50) 헌납으로서 과중한 부세‧족징(族徵)‧환곡의 불편‧권세가의 겸병 등 4가지 민폐를 지적하면서 해결책으로 균등한 토지소유를 위한 양전 실시‧통환(統還) 규정 실시‧사창 실시‧한전법(限田法) 실시 등을 주장하였다. 이후 공조참의에 제수되었다.
슬하에 아들 현영조(玄永祚)가 있다.
증조부는 현태시(玄太始)이고, 조부는 현두찬(玄斗燦)이다. 부친은 현명익(玄溟翼)이고, 모친은 여필흥(呂必興)의 딸이다. 생부는 현서익(玄瑞翼)이고, 처부는 이화신(李華臣)이다.
1743년(영조 19)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 주로 언론직을 역임하였다. 1774년(영조 50) 헌납으로서 과중한 부세‧족징(族徵)‧환곡의 불편‧권세가의 겸병 등 4가지 민폐를 지적하면서 해결책으로 균등한 토지소유를 위한 양전 실시‧통환(統還) 규정 실시‧사창 실시‧한전법(限田法) 실시 등을 주장하였다. 이후 공조참의에 제수되었다.
슬하에 아들 현영조(玄永祚)가 있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國朝榜目
國朝榜目
[집필자]
김성욱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10-10-23 | 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