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정관(沈廷觀)
[요약정보]
| UCI | G002+AKS-KHF_13C2ECC815AD00B1694X0 |
| 자(字) | 계빈(季賓) |
| 생년 | 1694(숙종 20) |
| 졸년 | 1779(정조 3) |
| 시대 | 조선중기 |
| 본관 | 청송(靑松) |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 부 | 심수견(沈壽堅) |
| 출생지 | 한성 |

[상세내용]
심정관(沈廷觀)
1694년(숙종 20)∼1779년(정조 3).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계빈(季賓). 한성 출생. 심수견(沈壽堅)의 아들이다.
1722년(경종 2) 신경제(申慶濟) 등이 송시열(宋時烈)의 관작과 시호를 추삭(追削)하고 윤증(尹拯) 부자의 관작을 복귀하기를 청하는 상소를 올리자, 심정관은 동지들과 함께 극력 반대하였다.
이듬해 김범갑(金笵甲) 등이 송시열을 도봉서원에서 출향(黜享)하려는 상소를 올리자 또 많은 선비를 이끌고 대궐에 부복, 상소하여 이를 물리쳤다.
1744년(영조 20) 사마시에 합격, 벼슬은 한성부서윤에 이르렀고, 86세 때 노인직으로 지중추부사가 되었다가 그해에 죽었다.
1722년(경종 2) 신경제(申慶濟) 등이 송시열(宋時烈)의 관작과 시호를 추삭(追削)하고 윤증(尹拯) 부자의 관작을 복귀하기를 청하는 상소를 올리자, 심정관은 동지들과 함께 극력 반대하였다.
이듬해 김범갑(金笵甲) 등이 송시열을 도봉서원에서 출향(黜享)하려는 상소를 올리자 또 많은 선비를 이끌고 대궐에 부복, 상소하여 이를 물리쳤다.
1744년(영조 20) 사마시에 합격, 벼슬은 한성부서윤에 이르렀고, 86세 때 노인직으로 지중추부사가 되었다가 그해에 죽었다.
[참고문헌]
霽軒集
[집필자]
반윤홍(潘允洪)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