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사억(韓師億)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D55CC0ACC5B5B1689X0 |
자(字) | 계년(季年) |
생년 | 1689(숙종 15)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청주(淸州) |
활동분야 | 유생 |

부 | 한배주(韓配周) |

[상세내용]
한사억(韓師億)
1689년(숙종 15)~미상. 조선 중기 유생. 자는 계년(季年)이다.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거주지는 한양(漢陽: 현 서울)이다.
부친은 통훈대부(通訓大夫) 전행사간원정언(前行司諫院正言) 한배주(韓配周)이다. 부인은 이사상(李師尙)의 딸이다. 형은 한사백(韓師百)‧한사만(韓師萬)이다. 서제(庶弟)는 한사강(韓師康)이다.
1708년(숙종 34) 식년시에서 생원 3등 63위로 합격하였다. 관직은 의성현령(義城縣令) 등을 역임하였다.
1728년(영조 4) 임금이 인정문(仁政門)에서 이인좌(李麟佐)‧이웅좌(李熊佐) 일당으로 역모 사건에 연루된 정의련(鄭宜璉)을 친국(親鞫)하였다. 이때 정의련과 서사촌(庶四寸)인 정의숙(鄭宜琡)이 의성현감으로 재임하고 있던 한사억(韓師億)도 역모에 동참하였다고 진술하여, 친국을 당한 뒤 풀려났다. 그러나 사헌부(司憲府)에서 다시 그를 잡아들여 벌할 것을 주장하는 상소가 수차례 이어지자 관서지방(關西地方)에 유배되었다. 1729년(영조 5) 형벌을 덜라는 임금의 하명이 있었고, 1731년(영조 7)에 석방되었다. 그러나 유배지에서 불편한 관계를 맺었던 함종부사(咸從府使) 한형(韓珩)을 모함하는 글을 써서 증산현감(甑山縣監) 이전(李塼)으로 하여금 암행어사에게 전해준 일이 드러나 관작이 삭탈되고 문외송출(門外黜送)되었다가, 1734년(영조 10)에 호남지방으로 이배(移配)되었다.
부친은 통훈대부(通訓大夫) 전행사간원정언(前行司諫院正言) 한배주(韓配周)이다. 부인은 이사상(李師尙)의 딸이다. 형은 한사백(韓師百)‧한사만(韓師萬)이다. 서제(庶弟)는 한사강(韓師康)이다.
1708년(숙종 34) 식년시에서 생원 3등 63위로 합격하였다. 관직은 의성현령(義城縣令) 등을 역임하였다.
1728년(영조 4) 임금이 인정문(仁政門)에서 이인좌(李麟佐)‧이웅좌(李熊佐) 일당으로 역모 사건에 연루된 정의련(鄭宜璉)을 친국(親鞫)하였다. 이때 정의련과 서사촌(庶四寸)인 정의숙(鄭宜琡)이 의성현감으로 재임하고 있던 한사억(韓師億)도 역모에 동참하였다고 진술하여, 친국을 당한 뒤 풀려났다. 그러나 사헌부(司憲府)에서 다시 그를 잡아들여 벌할 것을 주장하는 상소가 수차례 이어지자 관서지방(關西地方)에 유배되었다. 1729년(영조 5) 형벌을 덜라는 임금의 하명이 있었고, 1731년(영조 7)에 석방되었다. 그러나 유배지에서 불편한 관계를 맺었던 함종부사(咸從府使) 한형(韓珩)을 모함하는 글을 써서 증산현감(甑山縣監) 이전(李塼)으로 하여금 암행어사에게 전해준 일이 드러나 관작이 삭탈되고 문외송출(門外黜送)되었다가, 1734년(영조 10)에 호남지방으로 이배(移配)되었다.
[참고문헌]
CD-ROM 司馬榜目
英祖實錄
英祖實錄
[집필자]
이은영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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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