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득후(洪得厚)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D64DB4DDD6C4B1689X0 |
자(字) | 재후(載厚) |
생년 | 1689(숙종 15)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남양(南陽[唐])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상세내용]
홍득후(洪得厚)
1689년(숙종 15)∼미상. 조선 중기 문신. 자는 재후(載厚)이다. 본관은 남양(南陽[唐])이다.
증조부는 홍정설(洪廷卨)이고, 조부는 홍우적(洪禹績)이다. 부친 홍현(洪鉉)과 모친 이씨(李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1723년(경종 3)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 1734년(영조 10) 사헌부지평에 제수되었다. 1736년(영조 12) 사헌부장령에 올라 과거시험장의 폐단을 바로 잡는 데 주력하였고, 1742년(영조 18) 남혜로(南惠老)의 사건이 일어났을 때 파직하라는 소를 올리다 영조로부터 미움을 받아 체직되었다. 그 후 다시 장령‧헌납 등에 제수되었으나, 교리 한광회(韓光會)의 탄핵으로 또 다시 파직되기도 하였다.
아들로 사헌부집의 홍상직(洪相直)이 있다.
증조부는 홍정설(洪廷卨)이고, 조부는 홍우적(洪禹績)이다. 부친 홍현(洪鉉)과 모친 이씨(李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1723년(경종 3)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 1734년(영조 10) 사헌부지평에 제수되었다. 1736년(영조 12) 사헌부장령에 올라 과거시험장의 폐단을 바로 잡는 데 주력하였고, 1742년(영조 18) 남혜로(南惠老)의 사건이 일어났을 때 파직하라는 소를 올리다 영조로부터 미움을 받아 체직되었다. 그 후 다시 장령‧헌납 등에 제수되었으나, 교리 한광회(韓光會)의 탄핵으로 또 다시 파직되기도 하였다.
아들로 사헌부집의 홍상직(洪相直)이 있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國朝榜目
萬姓大同譜
國朝榜目
萬姓大同譜
[집필자]
김성욱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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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3 | 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