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명(趙尙命)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870C0C1BA85B1687X0 |
자(字) | 자휴(子休) |
생년 | 1687(숙종 13)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풍양(豊壤)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관련정보]
[상세내용]
조상명(趙尙命)
1687년(숙종 13)∼미상. 조선 중기 문신. 자는 자휴(子休)이다. 본관은 풍양(豊壤)이다.
증조부는 장령 조속(趙涑)이고, 조부는 문인화가 조지운(趙之耘)이다. 부친 조형보(趙衡輔)와 모친 임일유(林一儒)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형 조상경(趙尙慶)과 동생 조상행(趙尙行)이 있다. 처부는 이성한(李聖漢)이다.
1723년(경종 3) 증광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734년(영조 10) 관학 재생(齋生)들이 경의에 밝지 못한 폐단을 논하고, 시강한 후에 비로소 입재(入齋)를 허락할 것을 청하는 소를 올렸다. 1746년(영조 22) 대사간(大司諫)으로 재직할 당시 이조참판 심성희(沈聖希)가 고르지 못한 인사행정을 펼치고 있다는 것을 논핵하였다. 그러나 그 후 심성희에게 사죄하였다가 장령 홍득후(洪得厚)의 탄핵을 받았다.
증조부는 장령 조속(趙涑)이고, 조부는 문인화가 조지운(趙之耘)이다. 부친 조형보(趙衡輔)와 모친 임일유(林一儒)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형 조상경(趙尙慶)과 동생 조상행(趙尙行)이 있다. 처부는 이성한(李聖漢)이다.
1723년(경종 3) 증광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734년(영조 10) 관학 재생(齋生)들이 경의에 밝지 못한 폐단을 논하고, 시강한 후에 비로소 입재(入齋)를 허락할 것을 청하는 소를 올렸다. 1746년(영조 22) 대사간(大司諫)으로 재직할 당시 이조참판 심성희(沈聖希)가 고르지 못한 인사행정을 펼치고 있다는 것을 논핵하였다. 그러나 그 후 심성희에게 사죄하였다가 장령 홍득후(洪得厚)의 탄핵을 받았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國朝榜目
國朝榜目
[집필자]
김성욱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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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3 | 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