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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만추(田萬秋)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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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여숙(汝肅)
생년1685(숙종 11)
졸년?(미상)
시대조선중기
본관광평(廣平)
활동분야무신
전유일(田有一)

[상세내용]

전만추(田萬秋)
1685년(숙종 11)~미상. 조선 중기 무신. 자는 여숙(汝肅)이다. 본관은 광평(廣平)이고, 거주지는 한양(漢陽)이다.

조부는 전호겸(田好謙)이고, 부친은 절충장군(折衝將軍) 전유일(田有一)이다.

1717년(숙종 43) 식년시에 병과 34위로 무과 급제하였다. 관직은 금군(禁軍)‧보성군수(寶城郡守)‧맹산현감(孟山縣監) 등을 역임하였다.

1711년(숙종 37) 금군으로 있을 때, 숙종이 직접 전호겸의 자손들을 대궐로 불러들이라는 명에 들어가 인견(引見)하였더니, 별군직(別軍職)에 임명하라는 분부가 있었다. 1735년(영조 11)에는 보성군수로 재직하면서 사비(私婢)에게 빠져 지내느라 공무(公務)를 소홀히 했다는 비판과 함께 파직시켜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으나 임금이 허락하지 않았다. 1739년(영조 15)에 맹산현감(孟山縣監)으로 있을 때, 기생에게 현혹되어 늙고 나이든 사람을 몽둥이질하여 죽인 일이 있음을 지적하며, 파면시키는 것이 마땅하다는 집의(執義) 윤득징(尹得徵)의 상소가 있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750년(영조 26)에 영조가 무과 급제자들을 소견하는 자리에 아들 전득우(田得雨)도 있었다. 이에 아들 전득우가 차례가 되어 앞으로 나아가자, “이 사람은 명나라 병부상서(兵部尙書)의 증손으로, 그 아비 전만추(田萬秋)는 끝내 도총도사(都摠都事)를 지내지 못했다”고 하자 이에 그를 별군직(別軍職)에 차출(差出)하라는 명을 내렸다.

[참고문헌]


[집필자]

김경희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