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량(韓德良)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D55CB355B7C9B1683X0 |
자(字) | 사범(士範) |
생년 | 1683(숙종 9)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청주(淸州) |
활동분야 | 문신 |

부 | 한종노(韓宗老) |

[관련정보]
[상세내용]
한덕량(韓德良)
1683년(숙종 9)∼미상. 조선 중기 문신. 자는 사범(士範)이다. 본관은 청주(淸州)이다.
서평 부원군(西平府院君) 한준겸(韓浚謙)의 봉사손(奉祀孫)으로, 증조부는 한이성(韓以成)이고, 조부는 한두상(韓斗相)이다. 부친 한종노(韓宗老)와 모친 이수번(李粹蕃)의 딸 전주이씨(全州李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조구령(趙九齡)의 딸 옥천조씨(玉川趙氏)이다.
1713년(숙종 39) 증광시에 생원 3등 49위로 합격하였고, 1726년(영조 2) 식년시에서 병과 8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관직은 승문원박사(承文院博士)‧지평(持平)‧전라도 좌도사(全羅道左道事)‧장령(掌令) 등을 역임하였다.
1735년(영조 11) 전라도좌도감시(左道監試)의 초시(初試)를 파장(罷場)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전라도의 좌도사(左都事)로 ‘특서자동생(特書子同生)’을 부(賦)의 제(題)로 삼았는데, 유생들은 원자(元子)의 탄생을 위한 경과(慶科)에서 노(魯)나라 장공(莊公)의 고사(故事)를 인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비난하였다. 이에 시제를 바꾸고자 하였으나 유생들이 기와와 돌을 던져 시관(試官)들을 때리고 쫓아내며 난동을 부렸다. 이 사건이 임금에게 알려졌고, 조현명(趙顯命)의 상소에 의해 참시관(參試官) 홍성보(洪聖輔)‧서명걸(徐命杰) 등과 함께 관직이 삭탈(削奪)되었다. 사복시(司僕寺)에 추증되었다.
서평 부원군(西平府院君) 한준겸(韓浚謙)의 봉사손(奉祀孫)으로, 증조부는 한이성(韓以成)이고, 조부는 한두상(韓斗相)이다. 부친 한종노(韓宗老)와 모친 이수번(李粹蕃)의 딸 전주이씨(全州李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조구령(趙九齡)의 딸 옥천조씨(玉川趙氏)이다.
1713년(숙종 39) 증광시에 생원 3등 49위로 합격하였고, 1726년(영조 2) 식년시에서 병과 8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관직은 승문원박사(承文院博士)‧지평(持平)‧전라도 좌도사(全羅道左道事)‧장령(掌令) 등을 역임하였다.
1735년(영조 11) 전라도좌도감시(左道監試)의 초시(初試)를 파장(罷場)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전라도의 좌도사(左都事)로 ‘특서자동생(特書子同生)’을 부(賦)의 제(題)로 삼았는데, 유생들은 원자(元子)의 탄생을 위한 경과(慶科)에서 노(魯)나라 장공(莊公)의 고사(故事)를 인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비난하였다. 이에 시제를 바꾸고자 하였으나 유생들이 기와와 돌을 던져 시관(試官)들을 때리고 쫓아내며 난동을 부렸다. 이 사건이 임금에게 알려졌고, 조현명(趙顯命)의 상소에 의해 참시관(參試官) 홍성보(洪聖輔)‧서명걸(徐命杰) 등과 함께 관직이 삭탈(削奪)되었다. 사복시(司僕寺)에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집필자]
김경희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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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