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김성흠(金聖欽)

[요약정보]

UCIG002+AKS-KHF_13AE40C131D760B1682X0
자(字)경백(敬伯)
호(號)와계(臥溪)
생년1682(숙종 8)
졸년1757(영조 33)
시대조선중기
본관의성(義城)
활동분야학자 > 유생

[상세내용]

김성흠(金聖欽)
1682년(숙종 8)∼1757년(영조 33). 조선 중기 유학자. 자는 경백(敬伯)이고, 호는 와계(臥溪)이다. 본관은 의성(義城)이며, 출신지는 경상북도 안동(安東)이다.

증조부는 김시온(金是榲)이고, 부친 김구중(金龜重)과 모친 이표(李杓)의 딸 재령이씨(載寧李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세 명의 부인을 두었는데, 첫째 부인은 이동완(李棟完)의 딸 전주이씨(全州李氏)이고, 둘째 부인은 신분석(申賁錫)의 딸 아주신씨(鵝洲申氏)이며, 셋째 부인은 이만재(李萬材)의 딸 고성이씨(固城李氏)이다.

이동완(李棟完)과 이현일(李玄逸)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외조부 이표(李杓)에게 나아가 문장을 배웠다.

1711년(숙종 37) 식년시 생원 3등에 합격하였고, 성균관에 입학하여 수학하다가 벼슬에 뜻을 끊고 향리로 돌아와 독서하며 지냈다. 1711년(숙종 37) 스승 이현일의 신원소(伸寃疏)를 내는 일에 선봉이 되어 적극적으로 주창하였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이양신(李亮信)의 난을 토벌하기 위해 의병을 일으켰는데 난이 평정되자 향리로 돌아와 두문불출하며 지냈다. 1729년(영조 5) 와촌리(臥村里)로 옮겨와서 ‘와계당(臥溪堂)’이라는 편액을 내걸고 후진의 교육에 힘쓰며 지내다가 향년 7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저서로 『와계집(臥溪集)』이 있다.

[참고문헌]

司馬榜目
葛庵集
定齋集

[집필자]

김경희
수정일수정내역
2010-10-23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