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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흡(金道洽)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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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자화(子和)
생년1681(숙종 7)
졸년1743(영조 19)
시대조선중기
본관청풍(淸風)
활동분야문신 > 문신

[상세내용]

김도흡(金道洽)
1681년(숙종 7) 10월 5일∼1743년(영조 19) 11월 5일. 조선 중기 문신. 자는 자화(子和)이다. 본관은 청풍(淸風)이고, 출신지는 서울이다.

증조부는 잠곡(潛谷) 문정공(文貞公) 김육(金堉)이고, 조부는 영돈녕부사(領敦寧府事) 청풍부원군(淸風府院君) 충익공(忠翼公) 김좌명(金佐明)이다. 부친 형조판서(刑曹判書) 증 좌찬성(贈左贊成) 김석연(金錫衍)과 모친 군수(郡守) 어상준(魚尙儁)의 딸 함종어씨(咸從魚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황명석(黃命錫)의 딸 창원황씨(昌原黃氏)이다.

1719년(숙종 45) 서사(筮仕)로서 돈녕부참봉(敦寧府參奉)이 되었고, 1720년(숙종 46) 사옹원봉사(司饔院奉事)에 임용된 것을 시작으로, 1722년(경종 2)에 이르기까지 호조정랑(戶曹正郞)‧가평군수(加平郡守) 등을 두루 거쳤다. 1723년(경종 3) 부친의 별세로 관직에서 물러나 3년상을 치르고 가산을 정리하여 산으로 들어가고자 하였으나 주위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감히 행하지 못하였다. 1725년(영조 1) 사복시첨정(司僕寺僉正)에 임용되면서, 1740년(영조 16)에 이르기까지 관직에서 물러났다가 다시 나아가기를 반복하면서 평양서윤(平壤庶尹)‧파주목사(坡州牧使)‧호조정랑(戶曹正郞)‧양주목사(楊州牧使)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관직에서 물러나 집에 머물 적에는 부모를 즐겁게 해드리기 위해 정성을 다하였고, 외직으로 나갔을 때는 관리들과 백성들을 지나치게 아꼈는데 마치 동료나 벗을 대하듯이 공경과 신의(信義)로써 다스리니, 백성들이 공경하고 사모하였다. 특히 양주목사로 재임할 때는 하나 있는 동생과 떨어져 살 수 없어 근처에 집을 사서 함께 살았을 정도로 우애가 깊었다.

향년 6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김성채(金聖采)‧김성휴(金聖休)이다.

묘는 경기도 김포군(金浦郡)에 있다.

[참고문헌]

櫟泉集

[집필자]

김경희
수정일수정내역
2010-10-23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