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제(李以濟)
[요약정보]
| UCI | G002+AKS-KHF_13C774C774C81CB1680X0 |
| 자(字) | 중미(仲美) |
| 호(號) | 호은(壺隱) |
| 생년 | 1680(숙종 6) |
| 졸년 | 1764(영조 40) |
| 시대 | 조선중기 |
| 본관 | 전의(全義) |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상세내용]
이이제(李以濟)
1680년(숙종 6)∼1764년(영조 40). 조선 중기 문신. 자는 중미(仲美)이고, 호는 호은(壺隱)이다. 본관은 전의(全義)이다.
증조부는 이여옥(李汝沃)이고, 조부는 이행근(李行根)이다. 부친 이기전(李基全)과 모친 송후송(宋後松)의 딸 여산송씨(礪山宋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처부는 정송년(鄭松年)이다.
1710년(숙종 36)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 관직은 이조참판‧동지의금부사에 이르렀다. 1734년(영조 10) 장령으로 재직할 때 기근의 해결 방책을 진언하였다. 같은 해 다시 치국의 요령과 군덕의 면려(勉勵)를 골자로 하는 상소를 진달하였다. 전후 약 25년간 장령으로 있으면서 풍속의 순화와 시정의 득실을 논하는 상소를 수십 차례 올리는 등 국가 기강 확립과 민생 안정을 위해 힘썼다.
증조부는 이여옥(李汝沃)이고, 조부는 이행근(李行根)이다. 부친 이기전(李基全)과 모친 송후송(宋後松)의 딸 여산송씨(礪山宋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처부는 정송년(鄭松年)이다.
1710년(숙종 36)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 관직은 이조참판‧동지의금부사에 이르렀다. 1734년(영조 10) 장령으로 재직할 때 기근의 해결 방책을 진언하였다. 같은 해 다시 치국의 요령과 군덕의 면려(勉勵)를 골자로 하는 상소를 진달하였다. 전후 약 25년간 장령으로 있으면서 풍속의 순화와 시정의 득실을 논하는 상소를 수십 차례 올리는 등 국가 기강 확립과 민생 안정을 위해 힘썼다.
[참고문헌]
肅宗實錄
景宗實錄
英祖實錄
國朝榜目
景宗實錄
英祖實錄
國朝榜目
[집필자]
김성욱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10-10-23 | 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