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만증(柳萬增)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20B9CCC99DB1675X0 |
자(字) | 익중(益仲) |
생년 | 1675(숙종 1)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진주(晉州[土]) |
활동분야 | 무신 |

부 | 유귀삼(柳貴三) |

[관련정보]
[상세내용]
유만증(柳萬增)
1675년(숙종 1)~미상. 조선 중기 무신. 자는 익중(益仲)이다. 본관은 진주(晉州[土])이다.
부친은 통덕랑(通德郞) 유귀삼(柳貴三)이다.
1702년(숙종 28) 식년시에서 생원 2등 22위로, 진사 3등 24위로 입격하였다.
1709년(숙종 35)에 훈련대장(訓鍊大將) 이기하(李基夏)가 유만증(柳萬增)의 근력과 재예(才藝)가 남들보다 뛰어난 점을 높게 보고 무재를 기를 것을 권면하였다. 1728년(영조 4) 3월 소론정권이 소현세자의 증손인 밀풍군(密豊君) 이탄(李坦)을 왕으로 추대하고, 노론을 제거하기 위해 일으킨 무신란(戊申亂)이 발생하자 이를 제압하기 위해 윤순(尹淳)의 요청으로 남한산성에서 적병을 막는데 참여하였다. 이때 영조를 면담하여 적병을 막을 방도를 제시하였는데, 영조가 직접 검을 하사하면서 적병에 항복한 청주우후(淸州虞候)를 참수할 것을 명하였다. 이에 남한산성으로 진군하여 순사(巡使) 조용(調用)의 휘하에서 무신란 제압에 가담하였다. 1732년(영조 8)에는 경상좌도수군절도사(慶尙左道水軍節度使)로 임용되었다.
부친은 통덕랑(通德郞) 유귀삼(柳貴三)이다.
1702년(숙종 28) 식년시에서 생원 2등 22위로, 진사 3등 24위로 입격하였다.
1709년(숙종 35)에 훈련대장(訓鍊大將) 이기하(李基夏)가 유만증(柳萬增)의 근력과 재예(才藝)가 남들보다 뛰어난 점을 높게 보고 무재를 기를 것을 권면하였다. 1728년(영조 4) 3월 소론정권이 소현세자의 증손인 밀풍군(密豊君) 이탄(李坦)을 왕으로 추대하고, 노론을 제거하기 위해 일으킨 무신란(戊申亂)이 발생하자 이를 제압하기 위해 윤순(尹淳)의 요청으로 남한산성에서 적병을 막는데 참여하였다. 이때 영조를 면담하여 적병을 막을 방도를 제시하였는데, 영조가 직접 검을 하사하면서 적병에 항복한 청주우후(淸州虞候)를 참수할 것을 명하였다. 이에 남한산성으로 진군하여 순사(巡使) 조용(調用)의 휘하에서 무신란 제압에 가담하였다. 1732년(영조 8)에는 경상좌도수군절도사(慶尙左道水軍節度使)로 임용되었다.
[참고문헌]
[집필자]
나영훈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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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