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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광헌(呂光憲)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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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사장(士章)
자(字)유도(幼度)
생년1675(숙종 1)
졸년1745(영조 21)
시대조선중기
본관함양(咸陽)
활동분야문신
여필중(呂必重)

[상세내용]

여광헌(呂光憲)
1675년(숙종 1)~1745년(영조 21). 조선 중기 문신. 자는 사장(士章)‧유도(幼度)이다. 본관은 함양(咸陽)이고, 거주지는 한양이다.

증조부는 여이룡(呂爾龍)이고, 조부는 여윤제(呂尹齊)이며, 부친은 여필중(呂必重)이다. 외조부는 조내운(趙來耘)이고, 처부는 안경(安絅)이다.

1708년(숙종 34) 식년시 생원 3등 23위로 합격하였고, 1721년(경종 1) 정시 문과에 병과 3위로 급제하였다. 관직은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사간원헌납(司諫院獻納) 등을 역임하였으며, 품계는 계공랑(啓功郞)에 이르렀다.

1727년(영조 3) 이의연(李義淵)의 사주를 받아 음식에 독약(毒藥)을 타려했던 궁비(宮婢) 정형익(鄭亨益)을 먼 섬에 유배시킬 것을 임금에게 청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1734년(영조 10) 능침(陵寢)을 관리하는 능졸(陵卒)들을 협박하여 주변의 나무를 마구잡이로 베어가는 포악자들을 포도청에서 법에 따라 죄를 줄 것과 태복시(太僕寺) 소속 관리들이 말을 훈련시키는 화양정(華陽亭) 주변에 마음대로 집을 지어 100여 호(戶)에 달하자 불법으로 지어진 집들을 철거하고 말을 기르는 장소로 되돌려놓아야 한다는 것과 동몽교관(童蒙敎官)들이 학문을 전달하는데 게으름을 피우며 소홀히 하지 못하도록 매달 시험을 보도록 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을 상소하여 뜻을 이루었다. 그러나 사복시도제조(司僕寺都提調) 서명균(徐命均)이 그곳의 집을 모두 헐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상소를 올려 없었던 일이 되어버렸다. 1735년(영조 11) 영남지방 유생들에게 학문을 권장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소학(小學)』을 간행할 것을 청하여 뜻을 이루었다.

[참고문헌]

CD-ROM 司馬榜目
國朝文科榜目
英祖實錄

[집필자]

이은영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