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근사(全近思)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804ADFCC0ACB1675X0 |
자(字) | 이원(而遠) |
호(號) | 죽림(竹林) |
생년 | 1675(숙종 1) |
졸년 | 1732(영조 8)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용궁(龍宮)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상세내용]
전근사(全近思)
1675년(숙종 1)∼1732년(영조 8). 조선 중기 문신. 자는 이원(而遠)이고, 호는 죽림(竹林)이다. 본관은 용궁(龍宮)이고, 거주지는 경상북도 예천군(醴泉郡) 용궁면(龍宮面)이다.
증조부는 전이성(全以性)이고, 부친은 전오륜(全五倫)이다.
특별한 스승이 없이 가학으로 공부하였다.
1715년(숙종 41) 식년시 갑과 2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여러 벼슬을 거쳐 통훈대부(通訓大夫)에 올라 예조정랑(禮曺正郞)에 제수되었으며, 직산군수(稷山郡守)로 나갔을 때는 백성들의 사정을 알아주는 좋은 정책을 펴기도 하였으나, 부친이 병이 들자 관직을 사임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부친상이 끝나고 고성군수(固城郡守)에 제수되었을 때 큰 흉년이 들자, 자신의 월급을 털어서 백성들을 구휼하였다.
관직에서 퇴임한 후에는 경상북도 상주(尙州) 안령(鞍嶺)으로 옮겨 가 살면서 명예와 이익을 멀리하고, 경서와 사서를 읽으며 저서에 열중하였다.
증조부는 전이성(全以性)이고, 부친은 전오륜(全五倫)이다.
특별한 스승이 없이 가학으로 공부하였다.
1715년(숙종 41) 식년시 갑과 2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여러 벼슬을 거쳐 통훈대부(通訓大夫)에 올라 예조정랑(禮曺正郞)에 제수되었으며, 직산군수(稷山郡守)로 나갔을 때는 백성들의 사정을 알아주는 좋은 정책을 펴기도 하였으나, 부친이 병이 들자 관직을 사임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부친상이 끝나고 고성군수(固城郡守)에 제수되었을 때 큰 흉년이 들자, 자신의 월급을 털어서 백성들을 구휼하였다.
관직에서 퇴임한 후에는 경상북도 상주(尙州) 안령(鞍嶺)으로 옮겨 가 살면서 명예와 이익을 멀리하고, 경서와 사서를 읽으며 저서에 열중하였다.
[참고문헌]
[집필자]
박경이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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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3 | 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