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치중(崔致重)
[요약정보]
| UCI | G002+AKS-KHF_13CD5CCE58C911B1672X0 |
| 자(字) | 덕망(德望) |
| 생년 | 1672(현종 13) |
| 졸년 | ?(미상) |
| 시대 | 조선중기 |
| 본관 | 수원(水原) |
| 활동분야 | 문신 |

| 부 | 최숙운(崔淑雲) |

[관련정보]
[상세내용]
최치중(崔致重)
1672년(현종13)~미상. 조선 중기 문신. 자는 덕망(德望)이다. 본관은 수원(水原)이고, 거주지는 경(京; 서울)이다.
조부는 최효건(崔孝騫)이며, 부친은 최숙운(崔淑雲)이다.
1708년(숙종 34) 식년시 생원 2등에 2위로 합격하였으며, 1721년(경종 1) 증광시 을과에 1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관직은 장령(掌令)‧지평(持平) 등을 역임하였다.
1730년(영조 6) 장령 재임 시절 정시(庭試)의 고관(考官)이던 대사성(大司成) 이덕수(李德壽)의 아들인 이산배(李山培)가 과거에 으뜸으로 급제하자 평소 부친이 쓰던 문구(文句) 등을 사용하는 등 비리로 으뜸을 차지하였다는 소문이 돌자 이에 대한 조사를 하도록 상소를 하였다가 이 일로 인해 파직되었다. 1735년(영조 11) 다시 서용(敍用)되었는데 관료를 선발할 때 후보자 추천 자격을 가진 검의(檢擬)로 들어 쓸 것을 상소하는 관료들이 있자 이미 이산배의 문제를 일으킨 경력이 있는 자에게 검의 자리는 맞지 않는다는 임금이 말에 따라 검의는 되지 못하였다. 1782년(정조 6) 살아생전에 가자(加資)하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여긴 정조로부터 가자하라는 첩지가 내려졌다.
조부는 최효건(崔孝騫)이며, 부친은 최숙운(崔淑雲)이다.
1708년(숙종 34) 식년시 생원 2등에 2위로 합격하였으며, 1721년(경종 1) 증광시 을과에 1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관직은 장령(掌令)‧지평(持平) 등을 역임하였다.
1730년(영조 6) 장령 재임 시절 정시(庭試)의 고관(考官)이던 대사성(大司成) 이덕수(李德壽)의 아들인 이산배(李山培)가 과거에 으뜸으로 급제하자 평소 부친이 쓰던 문구(文句) 등을 사용하는 등 비리로 으뜸을 차지하였다는 소문이 돌자 이에 대한 조사를 하도록 상소를 하였다가 이 일로 인해 파직되었다. 1735년(영조 11) 다시 서용(敍用)되었는데 관료를 선발할 때 후보자 추천 자격을 가진 검의(檢擬)로 들어 쓸 것을 상소하는 관료들이 있자 이미 이산배의 문제를 일으킨 경력이 있는 자에게 검의 자리는 맞지 않는다는 임금이 말에 따라 검의는 되지 못하였다. 1782년(정조 6) 살아생전에 가자(加資)하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여긴 정조로부터 가자하라는 첩지가 내려졌다.
[참고문헌]
CD-ROM 司馬榜目
國朝文科榜目
英祖實錄
正祖實錄
國朝文科榜目
英祖實錄
正祖實錄
[집필자]
이은영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