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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배(李命培)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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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수평(受平)
호(號)모계(茅溪)
생년1672(현종 13)
졸년1736(영조 12)
시대조선중기
본관재령(載寧)
활동분야학자 > 유생

[상세내용]

이명배(李命培)
1672년(현종 13) 10월 15일∼1736년(영조 12) 7월 22일. 조선 중기 유학자. 자는 수평(受平)이고, 호는 모계(茅溪)이다. 본관은 재령(載寧)이고, 본적은 경상남도 함안군(咸安郡) 산인면(山仁面)이며, 출신지는 경상남도 함안(咸安)이다.

증조부는 이형(李炯)이고, 조부는 이몽종(李夢鍾)이다. 부친 이재종(李載宗)과 모친 성창우(成昌遇)의 딸 창녕성씨(昌寧成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김탕(金宕)의 딸 상산김씨(商山金氏)이다.

어려서부터 자질이 빼어나고 성품이 온순하였다. 장성해서는 자구(紫丘) 성영후(成永後)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99년(숙종 25) 전라남도 광양(光陽)에 유배중인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을 찾아가 수일(數日) 동안 강론(講論)하면서 학문의 요체(要諦)와 연원(淵源)을 들었는데, 이현일로부터 장래가 촉망되는 소년이라는 칭찬을 들었다. 함께 교유한 인물로는 곡천(谷川) 김상정(金尙鼎)‧퇴암(退庵) 권중도(權重道)‧송와(松窩) 안명하(安命夏)‧낙계(樂溪) 조영득(趙靈得) 등이 있다.

1704년(숙종 30) 향시에 응시하였으나 합격하지 못하였다. 평소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돈독하게 지냈다. 또 직접 가례서(家禮書)를 초록(抄錄)하여 두고 배운 것은 몸소 실천하며 모범을 보였다. 1713년(숙종 39) 부친이 별세한 후 더 이상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사서육경(四書六經)과 주자학(朱子學)의 자구(字句)을 일일이 해석하며, 마음을 다스리는 위기지학(爲己之學)에 전념하다가 향년 65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다.

슬하에 4남 2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이두망(李斗望)‧이규망(李奎望)‧이정망(李井望)‧이성망(李星望)이다.

묘는 함안군 산인면에 있으며, 산음사(山陰祠)에서 배향되었다.

저서로 『모계집(茅溪集)』과 『예설(禮說)』이 있다.

[참고문헌]

茅溪集

[집필자]

김경희
수정일수정내역
2010-10-23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